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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의 과격성을 복음의 생명력으로 압도하자 -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질의응답 중에서

2019년 07월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지난 6월 초 사랑의교회는 영광스러운 헌당감사예배를 드렸다. 많은 분들과 함께 헌당의 영광과 기쁨을 나눴는데, 역사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가 주강사로 참여했다. 매주 화요일 모든 교역자들이 모여 교회의 비전과 사역을 나누는 사랑의교회 창목회에서 맥그래스와 질의응답 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책을 통해서만 가까이할 수 있었던 인물을 대면해 생생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국적과 인종은 달라도 예수님 안에서 같은 형제임을 실감했고, 어떻게 해야 반기독교적인 문화 속에서 복음의 전진을 위한 사명을 다할 수 있을지 서로를 격려하며 영적 통찰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때 맥그래스 박사에게 질문한 내용 가운데 한국 교회의 사역자들, 평신도지도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대화들을 나누고자 한다.



오정현 목사 영국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세계 최고의 기독교 강국이었는데, 무엇이 원인이 돼 영국 기독교가 쇠퇴하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 영국 교회와 한국 교회는 어떤 식으로 연계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함께 이뤄 나갈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맥그래스 박사 영국이나 유럽의 영적 침체의 이유는 정확히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국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권위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갖고 있는 독특성과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얘기죠. 많은 교회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습니다. 지금 영국 교회는 성도들의 삶에서 비전과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회복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갖고 있는 독특성과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합의점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 영국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이해력과 친밀감의 결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일 것은 성도들이 정말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면, 그 확신은 삶에서 전도나 또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영국 교회에서는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진 상황이죠. 영국 교회는 대부분의 경우, ‘생존’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비전과 기독교 신앙을 꽃피우기 위해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정현 목사 알리스터 맥그래스 박사님과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같은 대학교에서 공부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써서 수많은 사람들을 불신 세계로 인도하고, 또 한 사람은 《도킨의 망상》이라는 책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다시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하나님을 부정했는데, 알리스터 맥그래스 박사님은 어떻게 그런 신앙적인 반응을 할 수 있었나요?

맥그래스 박사 한국에서는 새롭고 혁신적인 세계관을 수용하고 추구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을 혁신적이고 최신의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리처드 도킨스는 굉장히 오래된 주장들을 다시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신(新)무신론자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주장은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과격성은 굉장히 새롭게 느껴집니다. 영국에서는 어떤 주장에 대해 과격한 확신을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이자 진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에 대해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도킨스에 대해 접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을 완전히 꺼 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독교 신앙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도킨스의 기준 자체를 자신의 과학이나 학문에는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도킨스가 주장하는 내용과 같은 방법으로는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정현 목사 박사님은 올해 66세이신데, 십대 등 새로운 세대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계십니까? 할아버지 세대는 손자뻘 되는 세대와 어떻게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맥그래스 박사 기독교 진리는 언제나 어느 상황에서든 도전을 맞닥뜨리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 진리가 굉장히 오래됐지만,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진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다음 세대가 이렇게 오래된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행과 새로운 것들은 왔다가 사라지고 없어지지만, 분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음을 젊은 세대에게 강조해야 합니다. 영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도킨스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 신선하고 새로우며 이게 맞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다음에는 “우리가 왜 그걸 믿었지? 이거 정말 교묘하게 우리를 기만한 거였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얘기해야 하는데요, 첫 번째는 기독교 진리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진리라는 점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 이렇게 유행하고 있는 것이 좋을 수는 있지만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소위 지혜라고 발표되는 것들이 사실 어떤 면에서는 문화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그것 역시 유행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오정현 목사 목회를 하면서 늘 안타까운 것은 사역자들 가운데 복음과 십자가를 개념의 십자가, 지식의 십자가, 문화적 상징의 십자가로만 생각하고 생명의 십자가, 체험의 십자가, 변화의 십자가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박사님이 생각하는 개념의 십자가와 체험과 생명의 십자가에는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나눌 수 있을까요?

맥그래스 박사 우리는 십자가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경험하며, 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생명력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삶의 고백이 되고, 우리의 뼈에 살이 붙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이야기할 때 그저 어떤 개념이나 지적인 부분으로만 이야기하는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특히 젊은 목회자들은 십자가에 대해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십자가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십자가가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일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 신학과 더불어 이 신학이 줄 수 있는 생명의 능력과 진정한 힘을 동시에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맥그래스 박사와 다른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핵심은 신학이나 사역이나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을 향한 마음’이 동기가 돼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한 생명을 얻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제자훈련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Vol.237 201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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