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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지리여행

13 * 하나님의 나라, 동역으로 확장돼 가는 현장!

2015년 02월 박정식 목사_ 인천 은혜의교회

‘성서지리 여행’은 그동안 50여 회 이상 제자반 훈련생을 비롯한 성도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온 은혜의교회 박정식 목사의 깊이 있고 노하우가 담긴 성서지리연구를 담아내는 코너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메테오라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후, 지난 이천 년 동안 기독교 신앙을 꿋꿋하게 유지해오며 그리스 정교회의 중심 국가로 견고하게 서 있는 그리스. 그 역사적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그리스 중북부 산간 지역에 위치한 메테오라(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다.
그 이름대로 깎아지를 듯 솟아오른 수백 미터가 넘는 높은 절벽 위에 건립된 수도원은 오직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수도사들의 수도의 전당이다. 하지만, 400년 동안 모슬렘 국가인 오스만 튀르크의 속국으로 억압을 겪을 당시 철저하게 신앙의 전통을 수호하고 성경을 필사하던 정통 신앙의 산실이기도 하다.
오전 9시에는 출발해야 벼랑 옆으로 설치된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수도원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는데(사실 이 계단조차도 탐방객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것이고, 과거에는 외줄 도르래를 이용해야 했다), 한 수도원의 작은 예배당, 그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수도사들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며 울컥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곳에서 평생 수도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은 그 수도원의 아주 작은 마당 한편에 묻히고, 그 유해가 산화되면 수도원의 작은 납골당에 두개골과 정강이뼈를 수습해 놓는다. 납골당의 높은 천장 꼭대기까지 차곡차곡 쌓인 수도사들의 퀭하게 뚫린 두개골의 두 눈자위를 보면, 섬뜩한 느낌보다는 아련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하는 그들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위 사진은 메테오라 수도원/ 아래 사진은 메테오라 수도원 납골당)

 

델포이
성서지리 연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헬라의 모든 신화와 역사마다 거론되는 신탁의 현장과 서양 음악의 기원을 담고 있는 아폴론 신전. 헬라 신화에 의하면 이 지역의 주민들을 괴롭히던 왕뱀 피톤을 아폴론이 활로 쏴 죽이고, 피톤의 아내 퓌티아를 자신의 신전 무녀로 삼는다. 무녀 퓌티아는 삼각대 의자 위에 앉아 신전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유황 냄새를 맡으며 월계수 잎을 씹으면서 환각 상태에서 신탁을 했다. 그 신탁은 대부분 명확하지 않은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했기에 그 내용은 순전히 신탁을 받는 당사자들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다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극 오이디푸스 신화에서의 오이디푸스나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 왕, 도시 국가 아덴의 왕인 아이게우스 왕과 그 아들 테세우스의 탄생의 비밀, 페르시아와 국가의 운명을 내걸었던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선박 건조 등 모두 다 이곳에서 신탁을 받는 장면에서 그 운명이 시작된다.
수년 전 이곳 델포이에서 독일의 저명한 음악대학 교수를 만나게 됐는데, 그에게 우리 성서지리 연구팀의 메테오라를 출발해 중북부 산악 지역을 넘어 아덴으로 가면서 이곳 델포이를 들렀다가 가는 여정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이곳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서 서양 음악이 시작됐고, 그 음악의 장르가 지금의 음률과 간극이 크지 않다는 것과 이 음악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교회 역사 속에 일부 흡수됐다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 알려 줬다. 이런 의미에서 델포이를 한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나눈 적이 있었다.
델포이 바로 근처의 산간 마을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두메산골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모습이지만, 차멀미가 심한 분들에게는 두고두고 힘든 추억이 될 고행의 여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

 

(첫째,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터/ 둘째, 아덴의 파르테논 신전 야경/ 셋째, 아레오파고)

 

아덴
헬라 문화의 중심지이자 고대 도시국가 시대 때부터 문화와 학문의 번영을 이뤘던 철학의 도시기도 하다. 기원전 5세기 도시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지금 유네스코문화유산 1호로 지정된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할 만큼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아덴은 자신의 국토를 정복한 로마를 오히려 자신들의 문화와 사상, 철학으로 역정복해 버렸다.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도시의 모든 장소에서도 훤히 보이는 아크로폴리스에는 아테네 여신을 숭배하는 파르테논 신전과 바다의 신 포세이돈, 승리의 신 니케 등의 신전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다. 또 도시의 곳곳에는 수많은 우상의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울은 이 도시의 구원과 영적 회복을 간절히 기도했으리라!
만일 이 도시가 복음으로 변화될 수만 있다면, 로마를 비롯해 전 유럽을 복음의 물결로 뒤엎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그는 확신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그는 더 열정적으로 복음을 증거했을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 맞은 편, 아레오파고 언덕 앞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을 발표할 수 있는 자유 발언 공간이 있었다. 바울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고, 철학자들과도 기독교 절대 진리를 갖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그 결과는 그리 큰 소득이 없었던 것 같다.
성경은 아덴에서 단지 몇 사람의 회심자를 얻은 것으로 알려주고 있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행 17:34).
그러나 복음 증거와 그 복음의 능력은 지금 상태로 그 모든 것을 다 판단할 수 없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어떤 산술적인 결과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진정한 복음의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라 해도 결코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한 사람 철학으로 다시 무장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이 소중한 사역은 당장 눈앞의 것만 바라보는 근시안적이고, 세상의 가치로 치닫는 성공적 사역(?)과는 결코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을 겪는 동안 바울은 영적, 육적으로 탈진해 버린 것 같은 분위기를 성경에서 비밀스럽게 발견해 볼 수 있다.

 

(첫째, 고대의 고린도 운하 상상도/ 둘째, 현대의 고린도 운하)

 

고린도
그리스 반도의 최남단을 이루는 펠레폰네소스 해협과 맞닿아 있는 항구도시. 서쪽으로 이탈리아 반도와 연해 있는 아드리아 해의 레기온 항구, 동쪽으로는 에게 해를 끼고 겐그레아 항구가 있었다. 잘록한 개미허리 모양의 고린도 지역은 동서 간 바다 사이의 육지 폭이 불과 십여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로마의 네로 황제 시대에 운하를 파서 수백 킬로미터의 남부 해안선을 멀리 돌아가지 않고 항해 기간을 단축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실각함으로 그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19세기 말에서야 비로소 고린도 운하가 개통됐다.
이탈리아에서 에게 해로 향하는 대형 무역선들은 레기온 항구에서 화물을 하역하고, 그 화물들은 수레에 실어 겐그레아 항구로 이동을 시킨다. 그리고 다른 화물선을 이용해 에게 해를 통해 이집트나 터키 지역으로 운송했다. 크기가 작은 배들은 아예 배를 작은 도랑에 가설해 놓은 이동식 수레에 끌어 올려 통째로 옮기기도 했다.
그렇기에 고린도는 지중해에서 매우 중요한 무역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됐고, 고린도를 거쳐 가는 모든 무역선은 화물을 건너편으로 이송하는 동안 아크로폴리스에 자리 잡고 있는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며, 아프로디테의 여 사제들과 행음하며 육적인 방종을 구가하곤 했다. 그렇기에 당시의 사람들에게 고린도 여자들이라는 말은 ‘종교적 창기’를 일컫는 대명사로 통용됐던 것이다. 코린티아조마이(corinthiazomai)라는 단어도 ‘매춘’이라는 단어로 통용됐을 만큼, 고린도는 타락과 향락의 도시로 정평이 나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며 고린도교회를 세웠지만, 안타깝게도 이 공동체는 분파, 윤리의 문제, 우상의 제물에 참여하는 문제, 형제간의 송사, 은사의 남용, 부활에 대한 오해 등으로 바울에게 근심을 안기는 공동체로 전락했다.
에게 해 근처에 있는 겐그레아 항구의 유적 앞에서 서서 생각해 본다. 이 도시의 공동체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곳에서 뵈뵈 집사를 통해 로마 공동체에 서신서를 보내던 바울의 심정과, 로마서 16장에서 그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최소한 36명 이상의 동역자들 이름을 불러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걸출한 영웅’보다는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하고 희생한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동역에 의해 확장되어 감을 느끼게 된다.

 

Vol.188 201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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