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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눈높이로 다가가는 상담

2015년 12월 곽상학 목사_ 온누리교회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정의한다면, 청소년을 바라보는 것 또한 선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간의 단절이 극심한 오늘날의 청소년들과 기성세대 간의 문화와 언어는 심각한 이질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선교를 지역을 넘어선 수평적 선교라 한다면, 후자는 세대를 넘어선 수직적 선교라 할 수 있다.
이런 선교의 대상인 청소년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 가족, 내 이웃이자 매스컴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의 주역이다. 시대를 반영한 신조어를 부단히 제조해 내는 창의력과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 피라는 신분까지 갖춘 이들은 우리 사회에 파워 VIP로 등극한 지 이미 오래다. 이런 VIP 고객에게 상담이 아닌 면담을 요구하며 ‘말 좀 해 보자’란 식으로의 섣부른 접근은 오히려 부작용만 키우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면담과 상담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담자의 자발성에 있다. 청소년 아이들이 상담자에게 스스로 마음을 열고 입을 열 수 있게 하는 것이 상담의 알파요 오메가일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영혼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이상적인 상담은 과연 가능할까?
물론 최고의 상담가이신 성령님의 위로와 격려, 내주하심의 은총이 각 사람에게 임한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기성세대와 문화 및 가치관, 언어의 간극이 넓어질 때로 넓어진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눈높이로 접근하며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인가’가 상담 사역의 성패를 가름 지을 것이다.

 

아침 프로젝트 vs 7UP
평일 방과 후나 주말은 학원 일정으로 아이들이 몸살을 앓는다. 학벌주의와 한 줄 세우기식 경쟁 체제의 일그러진 교육 체제 안에 아이들이 고스란히 방치돼 있다.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 같은 고상한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사회는 성공과 행복한 미래를 담보로 아이들에게 과도한 사교육의 폭력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방과 후 아이들과 마음 편하게 상담 한 번 못한다는 게 사교육이 치열한 지역의 학교 교사의 푸념이다.
사교육 1번지라고 하는 지역에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담임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학원을 23개를 다니는 친구가 반에 있었다. 예체능 수행 평가까지 학원 선생님께 도움 받으며 엄마의 한풀이식 교육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14살짜리 남자아이를 볼 때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이것이 비단 그 아이만의 일이겠는가.
학업 성취도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아이들의 가슴 한편에는 저마다 불안과 분노가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유명한 게임 캐릭터인 앵그리버드가 아이들 가슴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학원 숙제와 온라인 게임 등의 이유로 한국 청소년의 취침 시간은 너무 늦다. 중1 학생들 중 12시 이전에 자는 학생이 한 반에 30%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 12~1시 사이에 자고, 심지어 새벽 3시 이후에 자는 학생들도 2~3명 정도 된다.
이렇게 늦잠을 자고 간신히 일어나 등교하기에 바쁜 아이들에게 충분한 아침 식사를 먹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예전에 나는 방과 후 학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과 상습적인 아침 결식 상태를 고려해 소위 ‘담임쌤과 함께하는 아침 프로젝트’를 운영해 봤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 4~5명을 한 모둠으로 엮어 간단한 아침 식사(김밥, 주먹밥, 샌드위치, 컵라면, 샐러드, 과일 등)를 준비해 등교 40분 전에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아침을 먹는 것이다. 말 그대로 밥을 먹는 것이다. 그것도 교무실에서 말이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집 밖에서는 하나같이 잘 먹는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행동도 매우 활발했다.
먹는 가운데 저마다 이야기보따리를 식탁에서 풀어 헤쳤다. 그러면 상담이 일어난다. 고민이 나오고, 우리 반의 숨겨진 정보가 노출돼 서로간의 오해가 풀린다. 밥상 공동체의 끈끈함은 상상 그 이상이다.
 온누리교회 청소년부에서도 적용된 밥상 공동체와 말씀 공동체가 바로 ‘7UP’이다. 학교 단위로 묶어 등교 전 아침 7시에 학교 근처 패스트푸드점이나 교정 특정 장소에서 큐티 나눔으로 모이는 것이다. 7UP은 그날 하루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을 골고루 먹고 나누며 서로가 한 몸임을 확인하는 자리이자, 하루의 영적 승리를 준비하는 소중한 아침 프로젝트다. 
교회 소그룹반 학생들은 보통 같은 학교가 아닐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그룹 반을 넘어선 학교 조직 작업이 필요하다. 단 2명이면 시작이 가능하니 교회 안에서 같은 학교별로 묶어 주고, 잘할 수 있다고 분위기를 조성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조직 단계에선 담당선생님(소그룹 담임이 아닌 지역 학교 근처에 사는 담당 교사)이 개입해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내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모임이 무르익고 추동력이 생길 때 즈음이면 믿지 않는 친구들까지 초대하는 전도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 큐티 잡지를 활용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며 실천할 수 있는 자료가 제공돼야 한다. 그리고 조장을 세워 기도제목을 취합하고, 아이들의 형편을 살피는 추수 활동이 필요하다. 교역자나 담당선생님이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스포츠 클럽 vs 단톡방  
경쟁과 성취 중심의 남자 청소년을 ‘ㅇ’으로 시작하는 3개의 단어로 정리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온라인게임’, ‘운동’, ‘야동’을 뽑을 것이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으면 남학생들이 찾는 곳은 곳곳에 포진돼 있는 PC방이다. 남학생들은 이곳에서 끈끈한 동맹 관계를 맺으며, 오프라인에서 맛볼 수 없는 승리감과 성취감을 만끽한다.
학교에서 남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뭐니 뭐니 해도 체육 시간이다. 점심시간도 체육 시간에 준한다. 움직이면서 발산해야 할 에너지가 남학생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장착돼 있다. 또한 자연적인 호르몬 분비와 어른들의 어두운 상업성의 온갖 음란물에 남학생들은 노출돼 있다. 
반면에 관계와 관심이 중요한 학생들은 ‘우정’, ‘외모’, ‘연예인’이라는 세 개의 ‘ㅇ’을 형성하고 있다. 화장실도 둘이 손을 잡고 가야 하는 여학생의 심리 기저에서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가 남자보다 훨씬 강함을 볼 수 있다. 또한 남학생들보다 훨씬 민감하고 감각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래서 학교마다 생활 지도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폭력이나 담배 같은 비행과 함께, 여학생들의 짧은 치마와 화장(비비크림, 틴트, 서클 렌즈)이 빈번하게 대두되고 있다. 예뻐 보이고 싶은 기본적인 본능과 학교 규율 사이의 간극이 아직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의 외모 기준은 대부분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다. 십대 연예인들이 브라운관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이제 연예계는 청소년이면 누구나 넘볼 수 있는 판타지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이렇게 남녀 청소년의 특징을 파악했다면 이제는 그에 맞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우선 남학생들은 재미와 소속감에 대한 결속을 다지는 데 더없이 좋은 스포츠를 교회 안에서 맛보게 해야 한다. 우리 교회 중등부는 남학생 소그룹을 교회 밖에서 하는 것을 권장한다. 활동량이 많은 남학생에겐 실내 예배 1시간도 그들의 인내심에 비춰 봤을 때 충분할 뿐더러, 협소한 소그룹 공간을 여학생 반에 젠틀하게 양보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로 반 대항으로 풋살, 농구 등을 하는데, 반드시 담임선생님이 함께 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때 서로 부딪히는 스킨십과 흘리는 땀방울은 고스란히 목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아빠들을 초대해서 함께 경기할 때면 아이들은 가정과 교회가 연계된 색다른 가정 반목회를 경험하게 된다. 아빠 팀이 이기면 아들들은 아빠의 ‘하루 노예’가 되기도 하고, 아들 팀이 이기면 아빠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하는 즐거움은 이 스포츠 반목회의 덤이다.
반면, 여학생들은 대화로 풀어야 한다. 소소한 간식과 함께 주제를 정해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주제는 말씀 안에서 찾는 것이 중요한데,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주제가 좋다. 예를 들면, ‘교실에서 시도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터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는 아빠를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교회를 욕하는 친구에게 어떤 이미지를 줘야 하나?’, ‘과연 학교 식당에서의 식기도는 가능한가?’, ‘학교 수련회에서 탈선하는 친구들 속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내가 가고자 하는 대학과 하나님의 비전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등 실제적이고 의미 있는 대화들로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학생들은 이미지나 꾸미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협동해서 큰 그림 그리기를 한다거나 손바닥 책자 등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 할 수 있다. 단톡방을 활성화해 주중에도 아이들과 소소한 삶을 나눈다면, 그것은 교회 문턱을 넘어 아이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게 한다.
별개로 부모님과의 단톡방도 매우 중요하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모습, 소그룹 하는 모습, 교회 행사에서의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 등으로 공유하고, 경조사를 나누고 말씀과 기도를 나누며 부지런히 소통하면서 부모들을 교회 교육의 주체로 끌어들여야 한다. 부모님의 협조 없이는 교회 교육, 신앙 교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교회 사역자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아이들과 그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모두 학교생활을 기반으로 한다. 자유 학기제니 학생 중심의 토론 수업이니 하면서 상상 이상으로 아이들은 학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교회에서는 교역자의 일방적인 설교와 담임선생님의 강의 위주의 분반 공부가 일색이다. 공교육을 능가하기는커녕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 돼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청소년의 고민을 크게 둘로 나누면 성적(成績) 고민과 성적(性的) 고민이다. 학교 성적(成績)과 이성 간의 성적(性的) 고민이 많다는 말이다. 건강한 스포츠 클럽의 활성화를 통해 아이들의 건강한 심신과 교회 소속감을 담보하고, 단톡방을 운영해 아이들과 부지런한 소통하며 가정과의 연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행복한 눈높이 사역
반응 없는 중학생들 때문에 힘들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교역자와 선생님들을 자주 보게 된다. 시크한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지금 중학생들과 이렇게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지?’라는 자괴감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건 오해다. 그들은 불만이 있거나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그렇다. 진짜 원래 그런 것이다. 그 나이의 표정은 그게 정상이다. 절대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수업 시간에 자고 있는 학생을 깨워 교실 뒤로 나가게 한 교사가 “아이씨, 짜증나!”라고 한 학생의 말을 들었다고 하자. 교사는 당장 발끈하게 된다. 어디서 선생님께 버릇없게 그런 욕을 할 수 있냐면서 분노한다. 그런데 그 상황은 그게 아닐 수 있다. 충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학생은 잠을 깨운 그 선생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 상황이 짜증이 난 것이다. 어젯밤에 늦게 자서 수업 시간에 유난히 졸렸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께 지적받았는데 뒤로 나가라고까지 하니 창피하기도 한 것이다. 상황도 싫고 자기 자신도 너무 싫어서 자기도 모르게(평소에 ‘짜증나’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기도 했거니와) 내뱉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전쟁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어른이 정보에서 우위를 점하던 과거와는 달리, PC와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더 이상 어른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부담스러운 꼰대일 가능성이 크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어른들의 말에 깊이 귀기울이지 않는다.
교실에서 선생님을 농락하는 동영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퍼트리고, 근거 없는 소문을 양산하고 배포한다. 세상을 야유하는 일은 너무나 빈번하다. 심지어는 자기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욕하고 저주하는 글을 게재하는 패륜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을 바라보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나도 알 건 다 알아. 내가 지금 당장 돈이 없고 힘이 없어서 그렇지. 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있는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언제까지 인내와 복종을 요구할 텐가.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권위(Authority)를 인정하지 않는다.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권위적’인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권위는 상대방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고 청소년의 눈높이로 그들을 마주할 때 청소년들은 비로소 어른의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그 순간 행복이 일어난다. 청소년 상담은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면담이 아닌 상담을 하면서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청소년 사역은 그래서 행복할 수밖에 없다.

 

 

곽상학 목사는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와 백석대학교 신대원, 총신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경인고등학교 교사와 온누리교회 파워웨이브 중등부 교육목사로 섬기고 있다.

 

Vol.197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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