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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실패담

예수님의 찢기심과 피 흘리심이 없는 교회

2016년 09월 김진수 목사_ 춘천엘림교회

우리는 고민이 깊으면 깊을수록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행동은 더욱 강단 있어짐에도 고민하는 시간 자체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고민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단어로 인식되면서 사람들은 고민하는 사람들을 향해 “뭐 그런 걸 고민해, 쓸데없이”라며 핀잔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고민, 생각, 사색의 시간이 사치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에 한 젊은 목사님의 죽음은 내게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목사님은 시골의 어렵고 작은 교회를 섬겼는데 사모님은 늘 일을 하셔야 했고, 목사님도 힘들게 사역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목사님과 가족은 사역을 하면서도 삶이 힘드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남아 있는 가족의 삶이 힘들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아마도 나의 아버님께서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시다 돌아가신 모습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또한 지금 내가 목회하는 현장과 생활을 위해서 힘들게 일하는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면, 돌아가신 목사님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현재의 사역과 앞으로의 나의 모습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 뜨는 섬김이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27세의 꿈에 부푼 젊은이를 불러서 목회로 인도하셨다. 50세가 넘은 지금 나의 남은 목회 연수와 평균 수명을 생각할 때 ‘나의 남은 생은 얼마일까’라는 고민과 함께,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가 해 보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2년간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물을 떠서 운동장으로 향했다. 함께 운동하는 동료 목사님들을 위해서다. 목사님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갈증을 해소시키는 한 잔의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물을 마실까? 물을 떠온 나를 생각하실까? 내게 감사한 마음은 가지고 계실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운동하고 갈증이 나니까 물을 마시고, 물은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물론 나의 생각이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나보다 먼저 물을 떠오신 목사님을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 새로운 임원진이 구성돼 ‘이제는 물을 떠가는 일을 졸업하겠구나’ 싶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계속해서 내가 물을 떠가게 됐다.
새로 선임된 총무 목사님이 내게 계속해서 물을 떠오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순간 싫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내 마음을 들킨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목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큰 보온 통에 물을 떠가지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데(여름에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얼음을 준비하고, 겨울에는 현미를 볶아서 끓여 가면 된다), 목사님들을 위해서 그것 하나도 행복한 마음으로 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그 이후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다. 내가 건강해서 운동하러 나가는 동안에는 물 떠가는 일을 통해 목사님들을 섬기기로 한 것이다.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모르는 성도, 목회자, 교회는 없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를 질문해 본다.
“진수야, 너는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니?” 솔직히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내 모습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닮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가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예”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여기서 나는 또 다른 질문과 고민을 하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예수님을 닮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찾은 답은 하나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으니,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도 예수님을 닮아 삶에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젊은 청년의 말이 생각난다. “주님께서 세우신 오늘의 교회에는 성찬이 없다.” 왜 오늘의 교회에 성찬이 없는가? 누군가 “우리는 매주, 한 달에 한 번, 절기 때 성찬식을 한다”라고 반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성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예수님의 찢기심과 피 흘리심을 보지 못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성찬이라고 할 수 없다.


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우리 교회를 위해서는,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고 희생도 하고 아픔도 참고 인내한다. 그러나 그 범위를 조금만 넘어서면 “나와 너, 나의 일과 너의 일,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 나의 웃음과 너의 웃음, 나의 울음과 너의 울음”이 되고 만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나의 살을 찢고 나의 피를 흘릴 수 있겠는가.
과연 무엇이 나를 이렇게 초라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일까? 마음이 아프다. 오늘의 교회, 그리스도인들, 목사님들을 보면서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봐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의 초라한 모습만 보여 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예수님께는 희망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에는 소망이 있는데, 오늘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와 우리가 모여 공동체를 이룬 교회에는 미래와 희망과 소망이 없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주님 앞에서 나의 고민은 오늘도 깊어진다.




김진수 목사는 서울중앙신학교에서 공부했고, 현재 춘천엘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Vol.205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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