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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개혁의 큰길과 샛길

2016년 10월 차정식 교수_ 한일장신대학교

이 땅 구석구석에 너도나도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반 영역은 물론 교육과 언론 현장 역시 개혁 없이는 더 이상 제 구실을 하기 어려운 듯 보인다. 특히 으뜸가는 가르침의 현장으로 주목받아 온 종교 영역 또한 개혁의 대상으로 부각된 것은 딱한 현실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을 정직하게 응시해 보면 인간이 모여 일을 도모하는 모든 자리에는 문제가 없을 수 없고, 또 그것을 고쳐 나가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종교 개혁 500주년에 듣는 개혁
기독교에 국한해 말하자면 올해가 종교 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보니 특히 ‘개혁’이란 어휘가 절실하고 민감하게 심중에 와 닿는 것 같다. 분위기를 띄워 무슨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치르지 않더라도,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꾸준히 개혁을 진행해 왔다.
마틴 루터가 포문을 연 서구의 종교 개혁은 그 개혁의 대상이 ‘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대 역사 전반에 걸쳐진 것으로,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한다’라는 기치 아래 지금까지 기독 교회의 모습을 꾸준히 갱신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즈음 한국 교회가 더 집요하게 ‘개혁’을 외치고 더 다부지게 그 행동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독교를 둘러싼 대외적 환경의 급진적인 변화가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구 변화는 물론 세대 간의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불통과 불화의 점진적 악화도 어쩔 수 없는 변수지만 경제적 양극화 현상의 심화, 정치권력의 무기력한 지체 및 퇴행 현상, 이기적인 세속 문화의 극대화 등 급변하는 대외 환경에 교회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해 온 탓이 적지 않다.


자기 투신 없이 너도나도 개혁만 외쳐
그래서 꽤 오래전부터 교회와 신학교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다양한 진단과 개혁 방안이 제출됐다. 그것을 모두 합하면 대강 개혁의 방향이 잡히고, 그것을 모든 교회가 액면 그대로 시행하고 수용하면 이상적인 개혁의 결실을 거둘 것만 같다. 그런데 이런 개혁의 분위기에 마치 시대정신이라도 만난 듯 너도나도 편승해 교회를 비판하고, 나름의 진지한 대안을 제시하다 보니까 우스꽝스런 일도 생긴다. 그 와중에 누가 개혁의 대상이고, 또 누가 개혁의 주체인지도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간단히 도식화하면 A는 B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해서 질타하면 B는 C를 개혁의 대상으로 다시 비판하고, C는 역으로 A를 개혁의 대상으로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다 보니 개혁의 대상은 곧잘 증발하고 그 주체 또한 좀처럼 그 세력을 응집해 꾸준히 중요한 몇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 채 산발적인 난타전을 벌이게 된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용을 쓰는 듯하지만 좀처럼 실질적인 개혁의 동력은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각종 개혁 지향적 심포지엄과 세미나, 워크숍들은 인적 물적 비용을 무색하게 할 만큼 초라할 뿐이다. 특히 줄기차게 개혁을 부르짖으며 까칠한 논조로 한국 교회의 아픈 구석을 찌르고 공격하는 부류일수록, 그 쟁쟁한 목소리를 교회 안에 깊숙이 끌어들여 자신이 속한 개 교회 내에서 개혁을 이뤄 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 교회 바깥으로 겉돌면서 막연한 추상적 대상으로 ‘한국 교회’를 설정해 공중에 울리는 꽹과리 수준의 참여로 맴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혁의 큰길은 누구나 동의할 만하고, 장기적인 발전 과제로 다수의 구성원들이 수긍할 만한 밑그림이어야 한다. 그간 논의해 온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기상의 회복, 물신주의로 세속화된 가치에 대한 줄기찬 저항,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 교회 구조의 민주화와 제반 운영의 투명성, 세상을 향한 겸비한 섬김의 자세 회복, 교회 안팎의 약자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 등이 개혁의 주된 과제로 부각될 것이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이런 개혁의 지향성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런 과제를 제대로 이뤄 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며, 누가 어디서부터 어떤 일을 통해 얼마의 기간 내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동원해 과제를 실현할 수 있을지, 그 세부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분산되고 원론적인 목표는 금세 희미해진다.


개혁 과제들의 샛길들
바로 그 지점이 개혁의 구체성이 빛을 바래는 순간이다. 개혁 과제들의 샛길이 워낙 복잡다단하고 무성해 큰길마저 잃어버리고 시큰둥해지는 사태가 생기는 배경과 사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교회의 자칭 개혁 주창자들은 인간의 심연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그토록 심오한 내면의 욕망을 갖춘 인간들이 모여 이룬 교회라는 조직체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시쳇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되 기득권자로 일컬어지는 자들이 그 일에 솔선수범하면 저절로 개혁이 성사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호랑이가 제거되면 여우가 그 가운데 또 다른 호랑이 노릇하는 게 인간사의 변함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개혁의 원론을 복창하는 습성을 버리고,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 현장에서 개혁의 섬세한 청사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다수가 동의하고 참여하며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성서의 원리에 입각해 고쳐 나가다 보면 조금씩 자신감이 따라붙게 되고, 그보다 좀 더 큰 과제도 겨냥해 점진적으로 개혁의 반경을 넓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혁 역시 즐거움 속에서 추진될 때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 일차적인 대상이 되는 사람은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혁돼야 할 것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한국 교회의 자화상과 무관한 한국 교회 교인들은 없다는 전제 아래 개혁은 겸손하고도 조심스럽게, 참여하는 모든 주체가 궁극적으로 기쁨을 누리며 희망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성공할 수 있다.
인간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특정 개인을 과녁 삼아 낙마시키려 하거나 수치를 주는 식의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통증을 자기 스스로 일부 감당함으로써 공통의 책임이 앞서지 않으면 작은 일조차 이루기 어렵다.
이제 성숙한 마음과 자세로 개혁의 공통 과제에 몸소 동참하며, 그 급선무로 우리의 오염된 언어와 정신을 새롭게 고쳐 나가야 한다. 더러 불가피한 투쟁이 있다 할지라도 개혁의 주체가 스스로 개혁의 대상이길 자처하고, 개혁의 대상도 심기일전해 그 주체로 우뚝 서서 기쁨으로 이 운동에 동참할 때 우리는 루터와 칼빈이 이룬 개혁보다 더 튼실하고 보람찬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차정식 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미국 메코믹신학대학원, 시카고대학교 신학부에서 수학했다. 현재 한일장신대학교 신학부 교수와 한국기독교학회 편집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Vol.206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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