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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 - D형 큐티는 나와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는 훈련

2017년 01월 박희원 목사_ <날마다 솟는 샘물> 디렉터

40~50대 성인들이 제자훈련을 받을 때 가장 어려워하는 과제가 바로 D형 큐티(훈련 큐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재를 예습하고, 말씀을 암송하고, 설교를 요약하는 등의 과제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금방 알겠는데, D형 큐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말한다. 아마도 D형 큐티는 제자훈련 과제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제자훈련에서는 반드시 D형 큐티를 요구하는가? D형 큐티를 하지 않으면 제자훈련이 안 되는 것일까?
D형 큐티가 유익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사실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어쩌면 훈련생들은 표현하지 못할 뿐 ‘이런 것을 왜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D형 큐티야말로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금년에 새롭게 제자훈련을 받는 성도들, 특히 장년 성도들에게 D형 큐티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자신을 성찰하는 훈련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나 자신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사실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자신이 누구며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지 못하고, 그에 대해 별 관심도 갖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칼뱅이 『기독교강요』 제1장 1절에서 “자아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다”라고 했듯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이뤄진다. 따라서 제자훈련도 먼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일반 계시 영역에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자기 계발이나 리더십을 다루는 책들도 자신이 누구며, 어떤 사람인지를 바르게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신앙인이 아닌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안다. 다만 실천하지 않거나, 실천하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차 한 잔을 마시며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면서는 자신을 성찰하는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성찰이란 치열하게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탐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며, 과연 그러한지를 계속해서 살피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성찰해 간 결과물들이 켜켜이 쌓여갈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자아관이 만들어지고, 이뤄져 간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40~50대 성도들은 그들의 인생 가운데 이 같은 성찰의 조각들을 쌓아 올려 왔을까? 세상에서 요구하는 여러 기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정과 직장, 아이들을 교육하고 양육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겨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까?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TV 시청과 여러 취미 활동으로 날려 버리고는 인생의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자훈련을 하는 기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말씀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시간이다. 그리고 큐티는 성경이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춰 보는 시간이다. D형 큐티는 잠깐 성경 말씀을 읽고 그 의미를 새기는 수준이 아니라, 성경이 지금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파악하고, 나는 과연 하나님의 진리에 얼마나 부합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며, 제자반에서 목회자와 동역자들의 피드백까지 받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 훈련
제자훈련 훈련생들은 D형 큐티를 하다 보면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은근한 불평의 목소리일 경우도 있다. 실제로 D형 큐티는 잘 읽고, 잘 쓰기 위한 훈련이다.
성인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읽고 쓰는 훈련을 받을 때는 지났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도 잘 깨닫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문맹률이 0%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이미 학교 교육을 받은 성인들에게 읽고 쓰는 훈련이 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성인이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읽어도 그 내용과 기록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글로 써서 표현하지 못한다.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도 학교를 졸업한 후 수십 년간 제대로 된 독서를 해 본 적도, 몇 단락의 글조차 써 본 적도 없는 경우가 꽤 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교육을 받고도 정작 그것을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고 사장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는 교회가 문맹을 깨뜨리고 사람들을 깨우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몇 명의 뛰어난 선각자들만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친 것이 아니다. 당시 교회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사회를 개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층민과 서민들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글을 모르던 여인들, 노비, 백정들이 교회에서 성경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성경의 가르침에 의해 진정한 앎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이름 없는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 흩어져 그들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세상에 대해 선각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과거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끼쳤던 것과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고,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배출해 왔는지에 대해 되돌아봐야 한다.
교회는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고 설교를 잘 듣는 것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설교의 각 구절마다 열심히 ‘아멘’을 외친다고 해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신앙을 토대로 다른 사람을 말이나 글로 설득하거나 정보를 제공해 본 경험을 가진 성도가 교회 내에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실제로 교회에서 큐티 세미나를 진행해 보면 충분한 교육을 받은 성인들조차 강사의 큐티 강의를 듣고도 정작 펜을 들고 종이에 써 보라고 하면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다. 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여인들과 하층민에게 한글부터 하나하나 가르쳐 이 땅을 복음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교회는 D형 큐티훈련을 통해 성도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
사실 읽고 쓰는 훈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필수 능력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읽고 쓰는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D형 큐티훈련을 해야만 한다. 


질문과 추론 훈련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주어진 질문에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찾는 데에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질문하기보다는 주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완성된 상태로 머릿속이나 다른 자료에 존재하는 정답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문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정답이 없을 것 같은 질문은 아예 회피한다.
그에 비해 D형 큐티는 질문하도록 훈련한다. 그것도 그 질문의 주제가 무엇이며, 어떤 대답이 요구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성도들, 특히 전통 교회 성도들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다. 그들은 소요리 문답 등에서 주어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해 봤을 수 있지만, 큐티나 소그룹에서 질문을 한 적은 거의 없다. 그들에게 성경 말씀, 목사님 말씀에 감히 질문을 하는 것은 불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듣고 믿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D형 큐티훈련을 갓 시작했거나 제자훈련을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성도의 D형 큐티를 점검하다 보면 연구와 묵상에서 자기가 한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써 놓은, ‘자문자답을 동문서답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이는 대부분 질문이 진지하게 작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특별히 떠오르는 의문이 없으니 그냥 의문사 ‘왜?’를 쓰고 본문을 대충 발췌해 붙인다. 또는 이미 어딘가에서 들어 알고 있던 내용을 답안으로 쓰기 위해 한 줄의 의문문을 만든다. 그러고는 교회에서 지금까지 들어온 수많은 익숙한(사실은 진부한) 표현들을 끌어모아 답으로 제시한다. 그러다 보니 질문과 대답 사이, 또는 본문과 질문 사이에 별로 연관성이 없는, 설교 시간에 자주 반복되는 경건한 단어들로 이뤄진 연구와 묵상이 나오게 된다.
여기서는 창의성이 나타날 수가 없다. 성인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창의적이기를 원하고 그들에게 창의적인 교육을 제공하기 원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지금까지 하던 것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앙의 영역에서 질문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거룩한 상상력을 발휘해 답을 추론하는 활동은 신앙의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즉 D형 큐티는 기존의 지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신앙에서 벗어나, 이전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또는 깊이 느끼지 못했던 진리를 찾아 자신의 속사람을 날로 새롭게 해 주는 것이다.


목회 사역을 위한 훈련
제자훈련생들이 D형 큐티를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제자훈련의 목적 그 자체와 가장 깊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왜 <날마다 솟는 샘물>과 같은 큐티 교재를 사용해 매일 큐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본문만 주어진 백지 상태에 자신의 묵상을 쓰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이는 바로 제자훈련을 통해 다른 이들을 말씀으로 섬기는 자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은 개인의 경건 생활을 훈련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을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한 훈련이기도 하다. 즉 다른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삶을 변화시키도록 돕는 사역, 곧 목회를 하기 위해서다. 비록 신학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평신도라 하더라도, 이후 소그룹에서 말씀을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능력과 잘못된 가르침이나 성경 해석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가져야 한다. 이는 결코 한두 번 강의를 듣거나 책 몇 권을 읽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사실 D형 큐티는 조금만 변형하면 한 편의 짧은 강해설교가 된다. 전문적으로 설교학을 공부하지 못했고 2년이라는 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D형 큐티가 익숙한 사람은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간단한 설교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된다. 제자훈련, 사역훈련을 받는 동안 매주 D형 큐티를 연습했다면 성경의 모든 본문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익숙한 성경 본문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성찰하고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이 목회자에게 말씀을 잘 가르치기를 기대하듯이, 소그룹 목회 사역을 감당할 평신도지도자들 역시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전임 목회자가 읽고 쓰며 질문하고 추론하는 일들을 통해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듯이, 소그룹 성경 공부 또한 말씀으로 영혼을 섬기게 될 사람들이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훈련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십 년 전에 졸업한 학교에서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것 같을지라도, 그것을 통해 성도들을 말씀으로 섬기라는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D형 큐티는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과제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과제라는 의미도 지닌다. 성경에 어떤 말씀이 기록돼 있는지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묻고 추론하며, 그것에 내 모습을 진솔하게 비춘 후 기존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D형 큐티다.
또한 D형 큐티는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며, 말씀으로 계시되는 진리의 깊이와 놀라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본기를 세우는 시간일 뿐 아니라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D형 큐티를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장점들을 누려 봄이 어떨까.






박희원 목사는 연세대학교 영어영문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대학부를 담당했고 현재 국제제자훈련원에서 <날마다 솟는 샘물> 디렉터로 섬기고 있다.

Vol.209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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