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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

의식주(衣食住)와 기독교 세계관 -식(食) 문화

2017년 07월 추태화 교수_ 안양대학교

사람은 먹는 것으로 결정된다?
사람에게 먹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에 먹는 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먹는 것과 관련한 속담이 적지 않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사람 없다’, ‘사흘 굶으면 담 넘지 않는 사람 없다’라는 속담은 ‘사람이 굶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정도로 절박해진다’라는 의미다.
또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도 먹는 것보다 중하지 않다는 게 상식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태에서 하는 행위들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 있어야 뭔가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밥을 먹고 생명을 유지한다고 해서 그게 다인가. 그렇지 않다. ‘밥 먹는 데는 개도 안 건드린다’라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인가. 밥은 자존심과 직결된다. 밥 먹는 행위는 단지 생명을 유지하는 단순 동작이 아니라 보다 더 고귀한 의미를 갖는다. 불교에서는 밥 먹는 것을 보시(布施)에 비유한다. 몸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행위라는 의미다. 또는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 차원으로 승격하기도 한다.
밥 먹는 행위에는 자신의 몸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바치는 지극정성의 헌신이란 뜻이 담겨 있다. 증산교에서는 ‘밥이 하늘이다’라며, 밥 먹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슬람교는 걸인에게 먹을 것을 주는 행위를 의무처럼 여긴다.
먹는 것은 되묻지 않아도 정말 중요하다. 먹는 것은 정치적이다. 사회적으로 갈등이 일어날 때 ‘밥그릇’ 싸움으로 보면 대부분 맞는다. 어느 그룹이 철밥통을 유지하려고 할 때 다른 그룹이 납득하지 못하면 갈등이 일어난다.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상당 부분은 먹거리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일어난 배경에도 역시 먹거리가 사상의 기저에 깔려 있다. 그들의 생각에 먹거리를 독점하는 부류(부르주아)가 ‘자신들만의 리그’로 계속 독차지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으며, 먹거리가 부족한 이들(프롤레타리아)에게 먹거리 배분의 기회를 줘서 착취와 소외를 불식해 보자는 의도가 있다.
막스는 말한다. “인간 존재는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 있다.” 이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사람에게 먹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다. 이제 물어야 한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성경 속 식문화
그러면 성경은 음식 문화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경작(노동)과 추수 원리(먹거리, 생명 유지)를 통해 사람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알려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게 하신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온전한 은혜를 통해 자신의 형상을 가진 피조물을 먹이시고 입히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5).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와 절대적으로 연관한다. “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땅은 그것의 열매를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하게 거주하리라”(레 25:18~19).
인간의 고뇌가 여기에 있다. 은혜의 섭리 안에서는 모든 것이 풍족하게 허락돼 있으나, 현실에서는 왜 그러지 못할까. 먹거리를 가운데 두고 서로 갈등하며 상처 입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7~18). 인간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먹는 문제는 인간 존재와 함께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식문화
식문화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좋은 도구다. 위에서 먹는 문제가 정치적(political issue, 밥의 정치학)이란 표현을 했는데, 먹는 문제는 사회적(social issue, 밥의 사회학)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 계층은 교묘한 형태로 존속한다. 예를 들면 고급과 중저가 제품처럼, 자동차에서도 럭셔리 세단과 중저가 경차에 차이가 있듯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과 저잣거리에서 먹는 음식에는 분명 그 어떤 구별이 있다. 문제는 그 구별이 사회적 차이로 존재하며, 거기에 계층 의식이 스며 있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도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정부가 국민의 먹거리 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이상적인 복지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국민의 지지도 크게 받을 것이다. 조류 독감으로 지금까지 달걀 값 안정을 위해 외국에서 급히 달걀을 수입하는 등 가격을 조정하느라 부산하다. 또 대선 기간에 생필품 값이 슬그머니 올랐다고 야단이다. 라면, 치킨 등 국민 식생활 기본 품목이 들썩인다. 먹거리는 국민의 삶과 직접 연관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한동안 힐링(healing) 열풍이 온 세계에 불어닥친 일이 있다. 몸 힐링에 대해 나온 것 중 하나가 웰빙 식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친환경 유기농이라는 이름으로, 먹거리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농가에서는 화학 비료를 안 쓴다는 증명까지 하고, 소비자들은 채식 위주 식단을 마련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에스라인, 건강 다이어트라는 용어가 세간에 회자되며 농산업, 유통 구조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방송은 이를 재빨리 특종으로 만들었다. 일명 ‘먹방’이다. 다이어트 성공, 날씬한 사람을 부각시키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뚱뚱한 이들이 방송 전면에 나온다. 건장한 체구, 왕성한 식욕에 건강미를 뽐내는 역발상이 먹방의 묘수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감각의 부활이다. 음식을 단순히 양이나 맛으로만 아니라, 아름답게 요리하고, 거기에 어떤 이야기를 더해 가는 이른바 스토리텔링 식문화는 인생의 행복을 위한 종합 엔터테인먼트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심야식당>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방송 스튜디오에서, 도시 공간에 갇혀 있는 식문화는 영역을 확대한다. 먹거리와 여행의 크로스오버가 탄생한다. 여행사들이 내거는 홍보 문구는 대개 이렇다. ‘이국적인 맛을 향해 떠나는 세계 여행.’ 여행과 맛이 어우러진 새로운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생에 먹어 봐야 하는 음식 100가지’는 기본이다. 위가 즐겁고, 입과 혀가 즐겁고, 코가 즐겁고, 눈이 즐거운 먹거리의 진화, 그 끝은 어디인가. 말초 신경까지 즐겁게 하는 음식에 취하다 정작 중요한 문제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먹거리에 너무 몰입해 인류 문화에 그림자가 깃들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식문화에 관한 기독교적 생각
성경은 이 분야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보여 준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식문화에 대해 어떤 시각을 제시하는가. 인간관계적인 측면의 사례를 살펴보자. 먹는 문제는 사회 안에서 정의, 불평등, 미혹거리의 문제로 파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이 부분을 명확히 해 준다.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 14:21).
현대 사회에서 식문화는 자기 선택 사항이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사회는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기에 개인의 능력과 선택에 따라 산다 할지라도 배려가 빠져서는 안 된다. 극단적 이기주의는 현대의 자유가 낳은 비인간적 야만성, 폭력이 내재한 원시성으로 돌변할 수 있기에 우려스럽다(vandalism). 이런 관점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절제하는 자세를 말했다.
먹는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인 영역에서 이제 신앙적 영역으로 확대된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이 말씀은 초대 교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금도 유효하다. 먹거리는 믿음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 주님의 제자 된 성도와 교회는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될 것이다. 굳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면 먹거리로 파생되는 여러 문제를 사랑의 이름으로 이기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먹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먹는 행위는 인간의 고귀한 삶을 유지하게 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 10:23). 그러므로 먹거리는 본능 행위에 묶어 둘 것이 아니다.
식문화를 거룩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성경은 현대의 식문화에 준엄한 교훈을 던지신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롬 14:20).


Vol.215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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