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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 - 목회자 자신을 먼저 목회하라!

2017년 09월 박희석 목사_ 광주사랑의교회

안정적인 목회, 간절함이 점점 식어 가다
2010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1월호에서 ‘크고 힘 있는 교회가 소리 없이 무너지는 이유’라는 고든 맥도날드 목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글에서 맥도날드 목사는 당장에는 아무 문제도 없고 겉으로는 힘이 있어 보이지만, 중대형 교회들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교회를 몰락시키는 첫 번째 이유를 ‘성공이 낳은 오만’이라고 언급했다. 교회의 부흥이 목회자와 교회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내가 사분오열되고 상처투성이였던 광주사랑의교회에 와서 제자훈련 목회를 한 지도 18년이 지났다. 지금의 교회는 양적으로 10배나 성장했고, 이제는 크게 관여하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갈 정도가 됐다. 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를 넘어서니 자연스레 제자훈련도, 심방도 부교역자들의 손에 넘어가,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안일함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나타난 현상은 목회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 갔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제자훈련의 목적이자 보람이라면, 성도들의 모습이 더 신령해지고 인격과 삶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훈련을 받아도 변화되지 않는 성도들을 보면 마음에 안타까움이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열심히 봉사하는 성도를 볼 때도 ‘저러다 말걸 뭐’ 하며 별 기대를 하지 않게 됐다.
목회 초창기에는 교회를 형식화된 틀 속에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교회 리더십들을 설득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같은 모습을 잃어 갔다. 그러던 중 선배 목사님들의 권면을 들었다. 선배 목사님들은 한결같이 “박 목사는 자기 교회밖에 몰라. 교회도 그만큼 성장했으면 이젠 한국 교회를 위해, 후배 목사들을 위해 일 좀 해야지”라고 말했다. 지당한 말씀이었다. 감사하게도 교회 장로님들은 내가 외부 사역을 하는 것에 대해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외부 사역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생각지 못한 감격과 재미를 더해 줬다.
 
교인들이 아닌 나 자신을 목회하라는 울림
은퇴를 앞둔 어떤 선배 목사님과 식사를 했다. 목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목사님께 은퇴를 앞둔 심정에 대해 여쭸다. 그때 목사님이 들려주신 짧은 한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박 목사, 이제 나는 나를 목회하네. 그동안은 교인들이 목회 대상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교인들이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교인들을 정죄했다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문제라는 걸 알게 됐고, 내가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교인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 목회한 지 30년 가까이 돼서야 이 사실을 깨달아 참 부끄럽다네. 박 목사도 나처럼 뒤늦게 깨닫지 말고 지금부터 자신을 목회하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교회는 고든 맥도날드 목사의 지적처럼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분명 부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목회는 위기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나를 알리고 싶은 교만한 마음과 더 움켜쥐려는 탐욕을 ‘한국 교회를 위한 비전’이라는 말로 예쁘게 포장했고, 옳은 일보다는 내게 유익이 되는 일을, 힘든 일보다는 편안한 일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목회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당연했다. 불현듯 바울의 고백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대사도였던 바울이 이 정도 목회의 위기의식을 느꼈다면 나 자신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자기(self) 목회를 위한 몸부림
선배 목사님과의 만남 이후, 남은 목회 여정에 변화가 생겼다. 목회 대상이 교인들로부터 나 자신으로 바뀌었다. 목회자는 자신을 먼저 목회해야 한다. 그럼 자기(self)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을 두고 고민하면서 많은 궁리를 했다. 생각 끝에 세 가지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세 가지는 나름 목회에 감격과 은혜가 넘치도록 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첫째, 설교를 할 때마다 누구보다도 먼저, 이 설교를 들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임을 전제한다. 가끔씩 18년 전에 했던 설교를 살펴볼 때가 있다. 그때는 젊었기에 나름 말씀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나 자신이 마치 완전체인 것처럼 가정하고 성도들을 판단하며 정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목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 단순한 진리를 잊은 채 목회를 했던 것이다. 내 힘으로 교인들을 변화시키려 했기에 나는 점점 탈진하고 있었고, 나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니 성도들도 변화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에는 각종 비리 혐의로 TV에 등장하는 대형 교회 목회자들을 볼 때, 참 많이 비난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 자신을 놓고 설교를 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비판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죄는 세상 말로 재수가 없어서 드러난 것일 뿐이고, 나 역시 얼마든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교인들을 향한 설교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나도 말씀대로 못 살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성도들을 어떻게 정죄할 수 있겠는가? 성도들은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온다. 그래서 죄책감과 자괴감이 마음을 지배한다.
그런 교인들을 향해 또 정죄의 화살을 날린다면 얼마나 잔인한 설교자가 되겠는가? 나는 목사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니 하나님의 은혜에 설교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설교는 실패한 사람들을 말씀으로 위로해 주고, 비록 실패했더라도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줘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성도들의 모습을 통해 내 연약함을 발견한다. 그래서 더 교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다. 이제는 오직 은혜만이 죄인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고, 오직 은혜만이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며, 오직 은혜만이 말씀대로 살아갈 능력을 공급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감사한 것은 말씀 앞에서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이 설교에 녹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 또한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둘째,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갖기 위한 개인적인 훈련을 한다. 이 훈련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보다 이 세상에 더 사랑하는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실 목회자라고 하면 이 땅에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목회를 해 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교회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내게 힘이 생겼다. 교인들에게 융숭한 대접도 받고, 가는 곳마다 좋은 자리에 앉았다. 교회의 재정도 어느 정도 마음대로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목회자라고 하더라도 자칫 명예와 권세, 물질의 풍요로움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런데 나 자신을 냉철하게 평가해 보니, 나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는 세상의 이런 영광을 거부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 땅의 어떠한 영광과 권세, 재물도, 예수님에게서 나의 시선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예수님께 더 집중하는 훈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만의 특별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친밀함을 쌓아 가는 방법을 마련했다. 나의 특별한 장소는 교회 본당이고, 시간은 집회가 없는 주중 오후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구한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 드리는 내 고백은 단순한 한마디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나는 하루에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100번씩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스님들은 하루에 ‘나무아미타불’을 수천 번 외울 텐데,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께 그 정도의 고백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기도를 했지만 특별히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음성은 없다. 그러나 하나도 서운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응답받아야 할 것이 없다. 그냥 내가 예수님 앞에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좋다. 목회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강단도 아니고, 성도들로부터 정성 어린 식사를 대접받는 자리도 아니며, 바로 골방,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 친밀함을 나누는 기도의 자리인 것을 깨닫는다.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그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내 심령은 목회의 감격과 은혜로 가득 채워진다.


셋째, 스스로 힘을 빼는 훈련을 한다. 헨리 나우웬의 『희미해지는 훈련』이라는 책이 있다. 나우웬은 이 책에서 목회자는 세 가지 훈련에 힘쓸 것을 조언한다. 첫째는 작아지는 훈련(Littleness)이다. 목회자치고 큰 교회를 목회하고 싶지 않은 목회자는 없다. 현실적으로 교회가 커지면 목회자도 덩달아 커지는 것을 느낀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더 낮은 자리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
둘째는 숨는 훈련(Hiddenness)이다. 목회자는 남들 앞에 자주 나서게 되기에 자연스레 스타 의식이 생길 수 있다. 내가 중심이 되려 하고, 내가 수고한 것을 알아주기 원하고, 누군가가 나를 떠받들어 줘야 행복을 느낀다. 헨리 나우웬은 스스로를 숨기는 훈련을 함으로써 예수님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약해지는 훈련(Powerlessness)이다. 성공할수록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일은 참 매력적이다. 교회가 부흥하게 되면 목회자에게 힘이 생긴다. 그 힘을 즐기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만약 그 힘을 스스로 빼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목회자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
나는 힘을 빼기 위해, 제일 먼저 교회를 짓지 않겠다는 선포를 했다. 그리고 벌써 5년째, 불편하지만 매 주일 경화여고 체육관을 빌려 예배드리고 있다. 겨울에는 난방을 해도 단열이 되지 않아 너무 춥고, 여름에는 반대로 너무 덥다. 방음이 되지 않아 소리의 울림이 심해서 설교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한번 설교하는 데 얼마나 큰 에너지가 필요한지 모른다. 그렇지만 교회가 힘을 빼야 교회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고, 목회자도 변질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에, 교회 건축비를 학교에 기부하고 지역 사회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스스로 힘을 빼기 위해, 작년부터 교회 분립개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작년 10월에 처음 교회를 분립했다. 우리 교회에서 5년 이상 사역을 한 부목사님에게 교인 80명 정도를 떼어 주고 3억 원 정도 개척 보조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앞으로 3년마다 분립하기로 교회 정관에 명기해 놓았다. 처음 해 본 일이었는데 내가 얻은 교훈은 교회 분립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적으로 있어도 그만이고 가도 그만인 분들이 좀 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교회를 위해 힘을 다해 수고하던 분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이 땅에 교회가 없어서 분립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분립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분립하는 지역 교회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분립을 하는 이유는, 또 하나의 교회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힘을 빼기 위해서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것이다.
제자훈련 목회를 하면 교회 토양이 좋아지기 때문에 분명히 성도들은 모여들고 교회는 부흥한다. 그러면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데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이 시기를 놓치면 제자훈련 하는 교회의 부흥은 자칫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특별히 제자훈련 목회를 하는 교회는 의도적으로 교회의 힘을 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회는 제자훈련의 영성을 잃게 되고, 목회자 또한 타락할 여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


흔히 제자훈련을 ‘나를 죽이는 훈련’이라고 한다. 제자훈련 하게 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나는 그동안 이 말씀을 훈련생들에게만 적용하려고 했다. 그들이 변화되지 않는 모습에 마음으로 낙심도 많이 했다. 이 단순한 진리, 즉 담임목사가 먼저 죽지 않으면 훈련생들에게 죽는 모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몰랐다.
목회자가 자신을 죽이는 일은 어쩌면 평신도들이 자신을 죽이는 일보다 더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회자가 진정으로 감격과 은혜가 넘치는 목회를 하기 원한다면,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는 치열한 몸부림을 쳐야 한다. 따라서 제자훈련 하는 목회자는 먼저 자신을 목회해야 한다. 나를 죽이는 훈련을 통해 은혜가 넘치는 목회가 되기를 원한다.






박희석 목사는 총신대학교, 미국 커버넌트신학교(M. Div.), 리폼드신학교(D. Miss)를 졸업하고,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했다. 현재 경기도 광주에 있는 광주사랑의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 중이고, 총신대학교 조교수로 섬기고 있다.

Vol.216 201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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