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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순교자적 신앙이 아니면 살아도 죽은 것이다

2017년 11월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오늘날은 어려운 시대다. 대낮이지만, 가시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칫하면 영적 빼꼼이가 될 지경이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싶지만, 세상은 이런 태도를 반역으로 여긴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에 세상은 경기(驚氣)를 일으키고, 불신자들은 온갖 교묘한 말로 조롱하며 교회와 신자를 희화화하기를 즐기고 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한다는 성경 말씀이 날카로운 칼처럼 가슴에 박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한 손에는 유혹과 또 한 손에는 채찍을 든 세상을 향해 교회는 반색을 하거나 주눅이 들고 있다. 이 틈을 타 이단은 기승을 부리고,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소리치며 믿는 자들을 미혹한다.
역사적으로 지금처럼 교묘하게 이성의 이름으로, 정치의 이름으로, 이념의 이름으로, 심지어 인권과 개혁의 이름으로 교회와 기독교를 핍박하던 때가 또 있었을까?
의당 교회는 비난의 구실을 주지 말아야 하고, 목회자는 자신을 살펴 시험에서 벗어나야 한다(갈 6:1). 그럼에도 세상은 온갖 이유로 비난의 구실을 찾을 것이고, 교회를 시험할 것이다. 거짓의 아비요 참소자인 마귀가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세상에서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순교자적 신앙의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도 실상 죽은 것과 같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는 예수님의 말씀에 목회자는 물론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의 초심을 회복하고, 사역의 배수진을 쳐야 한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복음의 순전함을 위해 세상의 지독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프로테스탄트적 외길 걷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과 얼굴을 붉히지 않고 살 수 있고, 또 인간적 본성은 그것을 원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대한 포용과 화해가 결코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믿는 자의 피 속에는 순교자의 DNA가 있다. 오직 주님 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복음의 영광을 위해 언제든지 생명을 내어놓을 각오가 없으면, 너무나도 유혹적이며 숨 막힐 만큼 위협적인 세상 권세에 굴복해 손이 묶이고 눈이 빠진 힘없는 삼손의 수모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이 복음과 십자가와 교회를 적대시하고,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정신을 훼손하면 우리는 순교를 생각하며 일어서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아니라 부활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삶 속에 펄펄 살아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으로 한국 교회가 역동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하는 조국의 안녕이 이에 달려 있다.


Vol.218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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