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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유적지

순천의 희망이 된 순천 선교사마을

2018년 10월 이소윤 작가_ 방송작가, 코리아바이블로드선교회


역사 속에서 순천의 모습은 선불교의 중심인 송광사로 상징되는 불교의 성지이자,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을 잿더미로 만든 고니시 유키나가가 만여 명의 왜군을 거느리고 마지막까지 조선 침탈의 야욕을 불태웠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땅이었다.

7년간의 임진왜란이 끝난 지 약 300년 뒤인 1894년, 미국 남장로교의 두 선교사 윌리엄 레이놀즈(William Reynolds)와 알렉산더 대머 드류(A. Damor Drew)가 처음으로 순천에 갔을 무렵, 고니시 부대가 쌓은 순천왜성은 한반도 침탈을 실행해 가고 있던 일본의 집요한 야욕을 보여 주듯, 지금보다 더 견고한 모습으로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여 년 후, 순천 왜성에서 서북쪽으로 약 12㎞ 떨어진 매산동 공동묘지 터 위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마을이 탄생한다. 순천뿐 아니라 전라남도 남부 해안지역 선교의 베이스캠프였던 그곳은 70여 명의 선교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순천 선교사마을이다. 순천선교 100주년이 되던 2012년에 개관한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은 약 600여 점의 유물을 통해 당시 순천선교부의 활동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젊은 선교사의 순교가 낳은 전라남도 선교 중심지

1894년 이눌서와 유대림이 순천에 복음을 전한 이래 전라남도 전역에서 활동하던 많은 선교사들이 순천을 오가며 복음 전파에 힘썼다. 그러던 중 190...

* 더 많은 내용은 <디사이플> 2018년 10월호에 있습니다.

Vol.228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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