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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소개

기독교 교육에 헌신하며 일제의 만행을 알리다 - 윌리엄 린튼 선교사

2019년 0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린튼 선교사 (William Alderman Linton, 1891~1960) 1912년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포함해 48년간 호남과 충청지역에서 사역했다. 1919년 8월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 대회에 참석해 3·1운동의 실상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전주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일제의 강제적인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학교를 자진 폐교해 일제로부터 추방당했다.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남대학교의 전신인 대전대학의 초대 학장에 취임했으나...

두 번의 눈물, 세 번의 헌신: 고귀하고 위대한 유진의 삶- 유진 벨 선교사

2019년 0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유진 벨 선교사 (Eugene Bell, 1868-1925, 배유지)유진 벨은 1868년 미국 켄터키주 스코트스테이션에서 태어나 센터 칼리지와 루이빌신학교를 졸업했다. 1895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특히 교육과 의료 사역에 헌신해 목포와 광주에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 한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사역하던 중 두 번이나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끝까지 한국에서 헌신하다가 1925년 소천해 광주시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묻혔다. 그의 후손이 ‘유진벨재단’을 설립해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하는 등 계속해서...

예수를 사랑한 사람, 예수가 사랑한 사람 - 애니 베어드 선교사

2018년 12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애니 베어드 선교사(Annie Laurie Baird, 1864-1916, 안애리)1864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태어나 학생자원운동을 통해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한다. 하노버대학 재학 중 만난 윌리엄 베어드(숭실학당 설립자)와 결혼한 후 1891년 조선에 도착해 사역을 시작했다. 숭실학당의 교수로 사역하며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수많은 찬송가와 대학 교재를 번역하고 문학 작품을 편찬했다. 암 치료차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한국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기를 소망해 다시 돌아와 1916년 평양에서 소천했다. 베어드 부부의 묘비가 양화진에 있어 그들의 한국에 대한...

생명행전, 그 길을 걷다 - 플로렌스 루트 선교사

2018년 11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아름다웠던 하와이 진주만이 처참한 모습으로 변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민족 해방 운동 확산과 세계 경제 공황으로 인해 일제의 동북아 식민 통치 계획은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전쟁의 시작, 격동의 한반도이런 긴박한 한반도의 상황을 지켜보던 각국의 선교부는 자국 선교사들의 철수를 권고한다. 1940년 11월 16일, 219명의 미국인을 태운 마리포사(S. S. Mariposa) 호가 인천항을 출항한다. 승선한 승객 대부분...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 로버트 그리어슨 선교사

2018년 10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 구례선, 1868~1965)1868년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태어났다. 댈하우지의대와 장로교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898년 캐나다장로회 초대 선교사로 파송됐다. 함경도에서 주로 사역했으며, 함경도 성진에 제동병원, 보신학교 등을 세웠다. 또한 성진을 본부로 삼아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살고 있던 간도, 블라디보스토크 등으로도 선교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1934년까지 조선에서 사역하고 은퇴 후 1965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황해도에서 캐나다로 온 편지캐나다 동부 대서양 연안의 노바스코샤(No...

회개의 눈물, 회복과 부흥의 마중물 - 로버트 하디 선교사

2018년 09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로버트 하디 선교사(Robert Alexander Hardie, 河鯉泳 하리영, 1865~1949)캐나다에서 태어나 토론토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했다. 교단이나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선교사로 1890년 조선에 건너와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로 돌아갔다가 조선으로 재입국한 뒤, 1897년에 미국 남감리회의 첫 의료선교사로 임명됐다. 철원과 원산에서 사역했으며 교육, 문서 등의 사역에도 큰 궤적을 남겼다. 1935년 은퇴 후 귀국해 1949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양심전(良心錢, Conscience Mo...

가교(架橋), 두르고 싸매고 보듬는 삶 - 겔손 엥겔 선교사

2018년 07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겔손 엥겔 선교사(Gelson Engel, 왕길지, 1868~1939)독일에서 태어나 교사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대회에서 복음 전파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 1892년부터 인도에서 교육 선교사로 사역했으며, 그곳에서 클라라 바스 선교사를 만나 결혼했다. 6년의 인도 사역을 마무리하고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해 선교 사역을 위해 기도하던 중, 호주 빅토리아장로교회 여선교회연합회의 요청을 받아 부산으로 파송된다. 호주 파송 선교사들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한 그는 순회전도자이자 목회자, 교육자로서 37년간 조선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아시아의 동쪽...

예수(耶蘇),오직 그 이름만 외치다! - 새뮤얼 모펫 선교사

2018년 06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새뮤얼 모펫 선교사(Samuel Austin Moffett, 마포삼열, 1864~1939)미국에서 태어나 하노빌대학과 맥코믹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신학교 동기 다니엘 기포드 선교사를 따라 1890년 조선의 선교사로 파송돼, 평양에서 사랑방 선교를 통해 널다리교회(현, 장대현교회)를 세웠다. 이후 조선인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평양신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24년간 사역했고,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와 함께 숭실중학, 숭실대학, 숭의여학교를 설립했다. 조선에서 45년간 사역하다 열사병에 걸려 1936년 미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쳤다.야소(耶蘇), 야소(耶蘇), ...

사랑방(舍廊房)에서 전해진 예수 사랑 -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

2018년 05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William M. Baird, 1862~1931, 裵偉良)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는 미국에서 태어나 맥코믹신학교에 재학하던 중 무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평양 개척 선교사로 활동한 사무엘 마펫의 인도로, 아내 애니 로리 아담스와 조선으로 향한 그는 부산으로 파송된다. 부산에서 전도여행을 하며 교회를 세우고 조선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사랑방을 서당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후 대구에서 선교부 개척과 교육 사역에 힘쓰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평양으로 가서 숭실학당을 세웠다. 선교 사...

도시와 마을을 다니며 뿌린 씨앗, 복음! -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

2018년 04월 이용남 선교사_ 세계선교공동체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Joseph Henry Davies, 1856~1890, 德倍時)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는 청교도 배경의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과 호주로 이민을 갔다. 대학생 시절 동생과 함께 인도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으며, 이후 호주로 돌아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콜필드학교를 세웠다. 다시 인도 선교를 준비하던 중, 조선에 대한 글을 접하고 누나와 함께 조선 선교사로 헌신한다. 조선에서 언어 공부와 선교에 매진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린 그는, 부산으로 향하던 배에서 천연두에 감염돼 폐렴으로 짧은 생을 마쳤다. 지난겨울,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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