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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리더의 기도가 성도와 공동체의 고통을 극복하게 한다

2013년 10월 김인희 목사_ 수서은혜교회

목회현장은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이 질병과 사별, 우울증과 정신질환, 부부갈등과 이혼, 학대와 부정, 알코올 중독과 자녀 양육의 어려움, 인간관계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고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고난을 피할 수는 없다. 비록 내가 올바르게 살아도 고난은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복음이 있다. 복음은 지금의 나를 유익하게 한다. 물론 구원은 종말에 재림과 함께 완성될 것이지만, 지금 이미 우리 삶 속에서 복음은 전인격적으로 역사하고 있으며, 사회정의와 자유, 평화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고난 앞에 움츠릴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 가운데 기도하면서 극복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끈질긴 기도로 조카 롯과 두 딸을 심판에서 건졌고(창 18:22~33), 모세는 두 손을 들고 기도함으로써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투에서 승리했으며(출 17:11),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제자들도 기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산 아래에서 귀신 들려 고통당하는 아이를 고치셨고,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막 9:29). 우리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는 주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빚으신다
이렇게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와 공동체를 볼 때마다, 얼마나 리더의 마음이 아프겠는가? 그래서 리더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원하는 대로 응답이 오지 않을 때나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할 때, 그 무기력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리더는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믿고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리더가 고난당하는 성도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할 때, 고난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고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말하지 않고, 긍정적인 측면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고난을 본다면 그 즉시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겠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고난이 주는 유익을 생각한다면, 잘 분별해야 한다.
사실 어떤 고통들은 우리의 처지와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으시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신다. 그렇다면 리더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것을 기억하면서 옛 사람을 회개함으로써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날마다 덧입어 주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도록 기도로 도와야 한다.
고난 앞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재림으로 말미암아 완성될 구원의 소망을 굳건히 붙들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리더의 사명이다. 평소에 리더들은 이런 고난의 긍정적인 의미를 성도와 공동체에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고난의 때에 리더와 공동체가 동일한 뜻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다. \

 

자생력을 키워주는 리더
러더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기도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공동체가 스스로 고난에 직면하고 고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손길을 발견하며 반응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고난들에 믿음으로 반응하게 해야 한다. 만약 이런 자생력을 키워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성도와 공동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마치 리더는 어린아이를 돌보듯이 계속 기도해 줘야만 할 것이다. 리더는 성도들이 스스로 고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자생력을 키워주는 성경의 리더들 가운데 베드로의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보호하시며 마지막 때에 반드시 구원을 완성하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보게 되면, 이 땅의 모든 것들은 일시적이며, 여러 가지 시험들도 잠깐 근심하게 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벧전 1:3~6).
둘째, 고난의 유익을 보게 한다. 우리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는 것이 고난이라고 알리고 권면한다(벧전 1:7).
셋째, 너희 착한 행실을 보여주라고 말한다. 고난당했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이 재림의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벧전 2:12). 많은 경우 고난을 당하면 삶을 잃어버리고 두문불출하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었다고 간증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자기 주변 사람들이 고난 중에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 알 길이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회생활(2:13~17)과 직장생활(2:18~25), 가정생활(3:1~7)을 하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바울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방법을 보면, 첫째, 바울 역시 베드로처럼 고난을 상대화시킨다. 고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롬 8:18).
둘째, 고난은 당연한 것임을 알라고 말한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상속자라면, 마땅히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롬 8:17).
셋째, 그 어떤 환난도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하라고 한다. 이런 사랑에 대해 깨닫고 확신한다면 모든 어려운 일들 앞에서 당당하게 이겨나갈 것이다(롬 8:35~39). 하나님은 모든 환난 중에서 능히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다(고후 1:3~4).
또한 야고보의 방법을 보면, 첫째,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 가운데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약 1:2~4).
둘째,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지혜의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한다.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감당하게 하거나 피할 길을 주신다(약 1:5~8).
셋째, 이런 시험이 자신의 욕심에서부터 왔는지, 믿음의 시련인지를 분별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은 인내함으로 대처해야 하지만, 욕심으로부터 온 시험들은 속히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약 1:9~18).
넷째, 이 땅의 고난에는 끝이 있음을 알라고 한다. 그래야 시련을 견딜 수 있고, 마지막 날에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약 1:12).
이 방법들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통해서도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고난을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뵙게 되는 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욥 42:5).

 

고통당하는 성도와 공동체를 위한 기도
리더가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모범을 가르치고, 거기에 따라 기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도 개별적으로 성경의 모범에 따라 기도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에게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고, 거기에 따라 기도하게 하면 개인의 감정과 간절함에 좌우되지 않고, 확신 속에서 지속적으로 믿음의 기도를 하게 된다는 점을 목회에서 확실히 경험하고 있다.
고통당하는 성도와 공동체에 좋은 기도의 모범은 시편인데, 과히 탄식시(3, 12, 22 ,25, 31, 38, 39, 42, 57, 71, 80, 120, 137, 139, 142편)라 불릴 만 하다. 시편에 많은 탄식시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고통이 있다는 뜻도 된다. 우리가 탄식시를 따라 기도하다 보면, 일관된 틀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보편적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의 기도 방법과 비슷하다. 대체로 6가지의 기본 틀이 있는데, 25편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통당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부른다. 1절을 보면, “여호와여…”, 탄식시는 언제나 ‘여호와여’로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수식어가 없다. 지금 숨이 넘어갈 지경인데, 길게 부르짖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지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둘째, 현재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아뢴다. 2절을 보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시인은 현재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아뢰고 있다. 매우 구체적으로 사실 그대로 아뢴다. 하나님 앞에 가릴 것이 무엇이 있는가? 
셋째,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을 한다. 3절을 보면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라고 확신의 고백을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내용은 모든 탄식시에 반드시 들어있다. 그래야 탄식시가 푸념이나 한탄이 되지 않고 믿음의 기도가 된다.
시인은 ‘주를 바라는 자에게’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1절, 3절, 21절). 왜냐하면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치 않으며(3절), 하나님께서 성실과 정직으로 자신을 보호하신다(8~10절)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믿음이 있기에 낙망하지 않고 주님께 ‘탄원’을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부분(8~10절)이 본 시편의 가장 중심 내용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뜻과 성품’의 따라 기도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넷째, 본격적으로 탄원한다. 4~22절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나오는 간구이다. 시인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한다고 눈물로 호소한다(4~5, 8~10, 12~15절). 그러면서도 ‘자신을 훈계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6~7, 11, 16~18절). 시인은 하나님의 뜻만 알기를 원치 않았다. 동시에 자신의 죄악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은혜 가운데 하는 기도이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외적인 문제와 함께, 내적인 죄의 문제도 함께 다루시길 원하신다. 시인은 계속해서 ‘나를 훈계하소서’와 ‘나의 죄를 용서하소서’를 3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다. 이런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고, 더욱 더 주님의 뜻과 성품을 알고 닮아가게 한다. 
다섯째, 응답에 대한 확신의 말을 한다. 19~22절은 탄원의 핵심 기도이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응답의 확신이 들어 있다. ‘현재의 고통’(1~3절)으로 시작했던 시인의 마음은 ‘응답의 확신’으로 변했다. 고통 중에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면, 응답의 확신은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여섯째, 찬양의 서약을 한다. 25편에는 ‘찬양이 서약’이 없지만, 성실과 정직의 하나님은 반드시 ‘주를 바라보는 백성’의 간구를 응답하시며,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
리더는 고통당하는 성도와 공동체로 하여금 ‘말씀을 통한’ 기도에 익숙하게 함으로써, 고통 중에 하나님과 실제적인 친밀한 사귐을 갖도록 해야 한다. 목회현장에서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와 공동체가 믿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와 감격을 하나님께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고통의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신 뜻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간증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진정 우리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이신 것이다(고후 1:3~4).

 

김인희 목사는 한양대학교와 총신대신대원, 총신선교대학원, 미국 풀러신학대학원(목회학 박사)을 졸업했다. 아나톨레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수서은혜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Vol.173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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