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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피하지 않는 ‘정통’으로 돌아가자

2016년 09월 신국원 교수_ 총신대학교

무신론자가 가장 당황스럽고 답답한 때가 있다면 언제일까? 삶이 힘들고 절망적인 순간일까? 인생의 고초는 모든 사람이 겪기에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인간 승리를 외치며 극복한다면 큰 희열이 있을 것이다. “인생이 그렇지 뭐” 하고 포기해도 비웃거나 나무랄 사람은 없다. 오히려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 정말 감사하고 싶은데, 그 대상이 없을 때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실제로 무신론자인 영국의 언론인이자 문인,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이 한 말이다.


촌철살인의 문장가, 체스터튼
체스터튼은 극적인 회심을 통해 신앙인이 됐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 변증과 문학 비평, 탐정 소설이나 판타지 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범죄자의 심리 묘사와 대개 악인의 회개로 끝나는 탐정 소설 『브라운 신부』로 유명하다. 그는 『순전한 기독교』를 쓴 루이스(C. S. Lewis)와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J. R. R. Tolkien)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 티모시 켈러나 필립 얀시와 같은 기독교 작가들이 즐겨 인용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 『정통』(Orthodoxy, 1909)의 서문을 쓴 필립 얀시는 그를 “내 신앙을 구해 준 거인”이라고 불렀다.
재치와 독설에 능해 ‘역설의 대가’라고 알려진 체스터튼은 언론인다운 재기발랄한 글쓰기를 통해 영국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당대의 걸출한 좌파 사회 비평가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와 비교되곤 한다. 이 둘은 친근한 적수라는 특이한 인연을 이어갔다. 쇼는 193cm에 130Kg의 거구인 체스터튼을 “뚱땡이 천재”(Colossal genius)라고 놀리곤 했다.
체스터튼은 엄청난 체구와 익살이 가득한 얼굴에다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로 논적을 꼼짝 못하게 하는 능력으로 유명하다. 그는 정식으로 신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평신도 신학자다. 하지만 기독교 진리를 불신자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제시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가 쓴 『정통』은 앞서 쓴 『이단』(Heretics, 1905)과 함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책의 기원은 역설적이다. 니체나 마르크스 같은 무신론자의 이론과 논리를 활용해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시작한 책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을 넘어 ‘객관적 진리’의 변증가로
체스터튼은 『정통』에서 자기 나름대로 이단을 만들어 내려고 애썼는데, 마지막 손질을 가하고 보니 그것이 ‘정통 신앙’임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기서 정통이란 사도신경에 잘 요약된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기독교를 말한다. 이 책은 그가 어떻게 불가지론과 무신론에서 벗어나 기독교 정통 신앙으로 돌아가게 했는지를 말해 준다.
체스터튼의 논의는 치열하지만 명쾌해 속을 시원하게 해 준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부정하는 원죄와 악의 실체야말로 ‘정말로 증명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신학자는 이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과신하지도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성을 잃은 자가 아니라 이성만 빼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야말로 미친 것이다. 그는 뿌리와 토대가 없는 이성이야말로 광기라고 말했다. 반면 신비야말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게 해 준다’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한 세기 전에 쓰였으나 그 변증적 가치는 리차드 도킨스 같은 ‘신종 무신론’이 극성을 떠는 지금 오히려 더 빛난다. 그는 이미 그 시대에 현대 철학의 ‘자살적 성격의 광기’를 감지했다. 극단적 실용주의가 결정론만큼이나 비인간적임을 갈파한 것이다.
그는 현대의 혁명가들이 회의주의를 통해서 스스로 존재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역설도 꿰뚫어 봤다. 사실의 세계는 ‘제한이 있는 세계’이기에 본성의 법으로부터 그것을 해방시킬 수는 없다. 호랑이를 우리에서 풀어줄 수 있으나 줄무늬로부터 해방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를 앞서 파악하고 경고한 이도 드물다.


전통과 개혁의 수호자
체스터튼은 전통을 “진리의 실천적 표현 중 하나”라고 말하며 매우 중시한다. 그는 전통을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전통은 과거의 인류를 포함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여론이기 때문이다. 전설도 대다수의 온전한 정신을 가진 마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책은 보통 한 미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전통의 핵심 부분인 정통 신앙은 ‘무겁고 따분하고 안전하며 진부한 무엇’이 아니라 ‘온전한 정신’이다.
그는 정통을 강조하지만 보수주의와는 엄격히 구별된다. 보수주의는 사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동의 급류에 방치하는 것이다. 반면 정통은 끝없는 개혁을 피하지 않는다. 개혁은 형태를 함축하고 세상을 특정한 모양으로 빚어 내려는 노력이다. 개혁은 자동적으로 전개되는 진화나 단지 길을 따라 걷는 것에서 취한 은유인 진보와도 다르다. 개혁은 ‘분별력이 있는 단호한 사람들을 위한 은유’라고 했다. 따라서 그는 정통 신앙을 ‘도덕이나 질서의 유일한 수호자일 뿐 아니라 자유와 혁신과 진보의 유일한 논리적 수호자’라고 강조했다.
체스터튼은 개혁은 망가진 것을 제 모양으로 돌려놓으려는 것이고, 우리는 그 모양새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세상이 현실을 이상에 맞춰 바꾸는 대신, 이상을 바꾸는 슬픈 현실을 폭로한다. 그것이 쉽기 때문이다. 체스터튼의 균형 잡힌 정통 사랑과 개혁 정신이 참으로 아쉬운 시대다. 수구적 보수가 아니면 대책 없는 진보만이 난무하는 지금, 교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도 그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펠리칸의 말처럼 “참된 전통은 죽은 자의 산 신앙이지만 전통주의는 산 자의 죽은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혜가 가득한 이 책이 절판이 된 것은 너무도 아쉽다. 누군가가 다시 출판을 해 많은 목회자와 지성인들의 손에 반드시 들려져야 할 책이다.

Vol.205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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