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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은 ‘꽉 쥔 주먹’이자 ‘활짝 편 손’이다

2017년 01월 신국원 교수_ 총신대학교

『풀스 톡』(2016)은 오스 기니스가 내놓은 『소명』(1998)과 『르네상스』(2014) 같은 여러 걸작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이 책을 올해의 변증학과 복음 전도 분야의 책으로 선정했다. 뛰어난 작가는 사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또 본 것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기니스는 이 두 가지 은사를 모두 가진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은사를 활용해 ‘소통의 시대’에 ‘불통’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기독교 변증’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했다.


변증은 신학의 출발점
초대 교회의 신학은 변증에서 시작됐다. 변증은 신학의 기초다. 하지만 오늘날의 변증은 위기에 처했다. 사람들은 변증을 무력한 논박으로 인식한다. 실제로 현재 변증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는 극소수다. 변증학은 ‘철학적 신학’이나 문화 관련 과목으로 바뀌곤 했는데, 그에 따라 내용도 달라졌다. 변증학을 유지하는 경우도 소극적 방어나 무례할 정도로 공격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기니스는 ‘소통과 선전의 시대’에 성경과 교회사의 소중한 유산인 변증이 잊히고 무시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기니스는 학교가 아니라 대중 강연을 통해 폭넓은 영향을 미쳐 왔다. 선교사의 자녀로 근대화 격동기를 겪던 중국에서 자란 그는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런던대학교에서 신학사와 옥스퍼드오리엘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윌슨 센터와 부르킹스 연구소 같은 사회·문화 연구 기관을 거쳤다. 영국국영방송(BBC) 기자나 스위스 라브리(L’Abri)에서 리더로 섬긴 것도 기독교적 안목으로 세상을 읽고, 문화 비평과 변증을 개발하는 훈련이 됐다.
『풀스 톡』은 변증의 역사를 파고 들어가 근본 성격을 밝혀 내는 ‘계보학’을 시도한다. 그는 피터 버거와 쉐퍼, 매거리지와 루이스, 체스터턴 같은 현대 작가들로부터 키에르케고르와 파스칼을 지나 에라스무스를 거쳐 어거스틴, 클레멘트와 저스틴 마터 같은 초대 교회 변증가들과 바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다시 히브리 시인, 지혜자, 선지자를 변증의 뿌리로 밝혀낸다. 그는 사실 ‘하나님 자신이 최고의 변증가’이시며 모든 사람은 그분의 일을 섬기는 종들이라고 말한다.


창의적 설득, 인간적인 변증으로
‘풀스 톡’ 또는 ‘바보 어법’(Narrenrede)은 기독교 안팎에서 널리 활용돼 온 숨은 지혜 방식이다. 그것은 ‘다만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을 바보 어법의 원조로 꼽지만, 사실 그것은 성경에 뿌리내리고 있다.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고 성령의 구속 사역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기니스는 인류의 타락 이후에 계시는 죄인을 회개의 자리로 부르시는 사랑의 설득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불신을 배지처럼 달고 다니지 않는가? 또한 도킨스 같은 ‘신종 무신론자’들이 대담하고 무례한 선동을 하는 판이다.
기니스는 지금이 변증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세상이 답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지 않는가? 지금은 침묵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독교적 설득이라는 구심점을 회복하고 전도와 변증, 그리고 제자도가 다시 연합돼야 한다. 본래 변증의 어원인 ‘아폴로기아’의 의미는 ‘되받는 말’이다. 우리는 불신자의 영적 무관심에 구멍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해야 한다.
또한 기니스는 예리하지만 따듯함이 함께하는 인간적인 변증을 강조한다. 참된 복음의 변증은 청중의 자리에서 그들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자세를 필요로 한다. 베드로의 말처럼, 변증은 ‘온유와 두려움’(존중)을 갖춰야 한다. 무신론자였던 카뮈도 ‘진실을 말하되 너그러운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음을 기억하자. 똑똑한 척하며 ‘실내의 산소’를 독식해 모든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에라스무스의 말처럼 ‘웅변’은 친절한 담론을 통한 설득이다. 논쟁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사람을 얻으려 해야 한다.
그래서 창의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4영리’같이 모든 이에게 표준화된 접근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창조적이며 유연하게 접근하는 방법을 이미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는 단 한 사람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다가가지 않으셨다. 기니스는 방법과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동시에, 전통적 변증을 포함해 기독교 안팎의 모든 가용 자산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것을 강조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법
기니스는 자신이 개발한 설득의 방법을 소개한다. 질문의 단계에서 해답, 검증, 결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동시에 변증은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논증이 너무 까다로우면 사랑과 예의가 없어 보일 수 있다. 이런 변증일수록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기술은 ‘마귀의 미끼’라고 했다. 패스트푸드처럼 짧은 시간에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진정한 효과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는 변증과 전도는 말이 아니라 진리를 삶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변증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걸림돌 두 가지가 교회 안에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위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인정하고 담대히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정신을 차리게 해 준다. 두 번째 걸림돌은 잘못된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위선보다 더 위험하다. 최악의 교황들도 사도신경은 믿었다. 기니스는 오늘의 이른바 훌륭한 인격적 신학자들 가운데, 그 내용을 부정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정말 개탄할 일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소통’이 중요한 시대에 교회가 불통의 위기에 봉착한 것은 이런 결함 탓이 크다. 그는 신빙성과 정체성을 상실한 기독교는 복음에서 미끄러져 진리를 각색하고 세상에 동화돼 결국 배교에 이른다고 경고한다. 기니스는 이들을 ‘유다’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신정통과 복음주의는 말씀 선포를 강조하며, 변증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의외로 공통점을 갖는다.
자유주의는 대화를 하려다 변증을 잃는다. 창의적인 설득은 변증과 전도, 그리고 제자훈련의 통합을 통해 회복돼야 한다. 변증과 전도는 결코 강압이나 호소가 아니다. 대화도 아니다. 일방적 선포에 그치지도 않는다. 오스 기니스에 의하면 변증과 전도는 ‘꽉 쥔 주먹’만이 아니라 ‘활짝 편 손’이 함께 필요하다. 기니스는 어떻게 변증이 꽉 쥔 주먹이면서 동시에 활짝 편 손일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Vol.209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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