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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야기

봉선중앙교회 * 지역사회를 섬기며 복음적 평화 통일을 꿈꾸는 제자 공동체

2017년 03월 조철민 목사

교회 : 봉선중앙교회

김효민 목사는 충남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Th. M.)를 졸업했다. 경기도 김포에서 4년간 개척 목회를 했고, 정읍성광교회와 광주동명교회 부목사를 거쳐 현재, 광주 봉선중앙교회 담임목사 및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광주지역 대표로 섬기고 있다.





빛고을 광주, 봉선동에 자리 잡은 제자 공동체
지역사회를 온전히 섬기고 있는 제자훈련 목회 현장을 찾는 일은 언제나 흥분되고 설렌다. 이번 현장에는 어떤 은혜가 있을지, 광주 봉선중앙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은 어떻게 제자훈련을 하셨는지, 성도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을지 등의 물음을 갖고 현장으로 향했다.
광주라고 하면 ‘빛고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많은 사람은 ‘빛고을’ 하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만, 내게 ‘빛고을’이라는 단어는 민족 복음화의 빛이 돼 달린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민족 복음화의 빛으로 사용될 봉선중앙교회가 위치한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은 서울 신도시와 같은 느낌이 한껏 풍기는 동네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도시는 조용했다.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잔디로 조성된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고, 따뜻한 벽돌로 건축된 아름다운 교회가 보였는데 그곳이 바로 봉선중앙교회였다.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교회에서 김효민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일념으로 봉선동이라는 지역사회를 섬기며 제자훈련에 헌신하고 있는 목회자다. 30년 역사를 지닌 오랜 전통 교회인 봉선중앙교회에 제자훈련 목회 철학을 심어 평신도들과 함께 기쁨으로 동역하고 있는 김효민 목사로부터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섬기는 제자훈련 교회의 이야기를 들었다.

청소년의 눈물을 통해 목회 현장에 들어오다
대학 시절 김효민 목사는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섬기는 사역을 했다. 당시 평신도였던 김 목사는 중고등부 부장을 맡았는데, 목회자가 없다 보니 설교도 해야 했고, 심방도 해야 했다. 마침 중고등부 아이들과 함께 여름수련회를 갔는데, 집회 시간에 눈물로 예수님을 찾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 왔다.
당시만 해도 김 목사는 목회자가 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눈물과 땀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부르신 길이 목회의 길임을 깨달았다. 결국 김 목사는 목회로의 부르심에 순종한다.
김 목사는 대학 시절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훈련받았다. 그는 캠퍼스 현장을 보며 영혼이 주님을 찾고 헌신된 사역자로 서는 것을 봤다. 그러면서 캠퍼스 현장에는 뜨겁게 사역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훈련을 통해 교회 현장을 세워 가고자 하는 노력은 미비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김 목사는 CCC 간사로 섬기는 것보다 교회를 섬기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해 신학대학원 진학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교회 현장에서 사역을 시작한다.
김 목사는 신학대학원 시절이었던 1995년, 선택과목으로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을 수강하며, 향후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이하 CAL세미나)에 꼭 참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김 목사는 이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교회 개척 전까지 인천 영천교회에서 사역하는데,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교회 개척을 계획하며 간절히 바라던 40기 CAL세미나에 참석한다.

CAL세미나, 목회의 본질을 발견하다
열정 많은 캠퍼스 선교단체 출신 목회자에게 CAL세미나는 목회의 본질을 정립하는 기회의 장이 됐다. 사실 김 목사는 CAL세미나에 참석하기 전에 스스로 던진 질문이 있었다. “하나님,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은 모든 목회자의 고민일 것이다. 건강한 교회에 대한 고민은 모든 목회자가 영원히 감당해야 할 숙제와도 같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고(故) 옥한흠 목사를 존경해 왔는데 직접 세미나를 듣고, 사랑의교회 현장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그는 CAL세미나에서 교회론 강의를 들으며 평신도를 깨워 동역하는 것이 교회의 속성이며, 성경적인 목회 방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이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열린사랑의교회, 복음 전도자로 살았던 시절
CAL세미나를 들은 목회자라면 누구나 세미나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배운 내용을 목회 현장에서 직접 해 보고 싶어 한다. 당시 김 목사는 교회 개척을 계획한 상태에서 CAL세미나를 들었기 때문에 뜨거운 열정이 충만했다. 1999년 4월, 25평 상가를 빌려 ‘열린사랑의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한다. 옥 목사같이 목회를 하고 싶어서 ‘사랑의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교회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열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실제로 교회의 문을 24시간 개방했는데, 처음에는 청년 2명이 예배에 참석했다. 김효민 목사는 매일 새벽기도 후 사영리와 주보 3천 장을 들고 나가서 전도했다. 주보를 가지고 나간 이유는 주보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었는데, 이를 가지고 전도하면 자신의 목회 방향이나 말씀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근길 전도는 김 목사로 하여금 영적 야성을 갖게 했고, 실제로도 주보 글 때문에 연락이 오기도 했다. 또 사영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열매들을 통해 교회가 부흥해야 하는데, 실제로 등록하는 교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사람 철학’에 대한 열망과 열정을 갖고 제자훈련 사역을 감당했다.
그러던 중 당시 교회 근처 아파트 상가에서 사역하는 목사님이 김 목사를 찾아와 “목사님! 교회가 많이 부흥했습니까?”라고 물었다. 김 목사는 “아니요. 목사님! 아직 큰 변화가 없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런데 아파트 상가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 자신은 개척한 지 4개월이 됐는데, 100명이 돼 간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목회자로서 자괴감이 들 수도 있지만, 김 목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도들의 화석화된 신앙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그는 결국 개척한 지 4년 1개월만에 교회 문을 닫는 아픔을 겪는다.
당시 김 목사는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주의 종으로서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지쳐 있는 김 목사를 위로하셨다. 그래서 김 목사는 낙심하고 낙담하는 순간에 새로운 희망을 갖고 인간의 방법과 열정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목회를 하겠다고 결단한다.
사실 김 목사는 개척 당시 사역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등 주님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슬픔을 겪으면서 모든 방향을 새롭게 전환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김 목사는 비가 온 뒤 땅이 더욱 단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부교역자 생활을 시작하다
2003년 5월, 김 목사는 정읍성광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함께 섬기는 교사들과 제자훈련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부어 주셔서 변화의 모습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광주동명교회에서 사역을 이어 갔는데, 그곳에서도 제자훈련 사역자로 섬길 수 있었다. 청년부와 교구 사역을 함께했는데, 하나님께서 청년부 사역을 통해 많은 은혜를 주셨다.
청년들에게 기도 헌신자로 헌신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일어나라고 했더니 200명이 넘게 일어났고, 60여 명이 장단기 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결단했다. 당시 청년부 수련회 강사로 오신 이용규 선교사님도 지역 교회 청년부에서 60명 넘는 청년들이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고 한다.
이 모든 사역의 열매는 제자훈련을 통한 사역의 결과물이었다. 김 목사는 그때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는데, ‘목사가 바뀌니깐 성도들이 바뀐다’라는 사실이다. 목사가 말씀 앞에서 매일 씨름하고, 무릎으로 나아가며, 삶으로 보여주니 성도들도 목사와 같은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교회 개척의 실패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던 김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부흥을 체험했고, 제자훈련 사역의 열매를 부교역자 시절에 경험하며 이 길만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김 목사는 더욱더 강해져 제자훈련 사역자로서의 준비를 하다가, 2009년 9월 봉선중앙교회에 부임한다.


전통 교회에 제자훈련 목회 철학을 심다
김 목사가 봉선중앙교회에 부임할 당시 들었던 이야기는 “목사님! 성경적으로만 목회해 주십시오”라는 말이었다. 말씀을 통한 성경적인 목회를 해 달라는 부탁을 싫어할 목회자가 어디 있겠는가! 김 목사는 감사한 마음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제자훈련이 성경적인 목회이기에 고민 없이 부임한 이듬해 1월부터 곧바로 훈련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1월에 훈련을 시작하겠다고 공지는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훈련 토양이 다져 있지 않아 시작해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제자훈련 전 단계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장반’이라는 과정을 만들어 시작했다. 봉선중앙교회 성도들은 제자훈련 전 단계 과정으로 14주 동안 성장반 훈련을 받는데, 여기서는 집중적으로 복음 메시지만 다룬다고 한다.
많은 과제물을 통해 이 단계를 소화해 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죽고, 주님께서 사신다’라는 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훈련을 통하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제자훈련 전 단계인 성장반 사역을 하면서 새벽기도와 암송을 병행하다 보니, 사람들의 심령에 변화가 일어났다.
단적인 예로, 한 권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목사님! 주방이 조용해졌어요!” 성도들이 복음을 알게 되자, 자신의 더러운 본성이 나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제어하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 결과 함부로 말하는 일이 없어졌고, 자기 자신을 말씀에 빗대어 돌아보게 됐다.
성장반 14주 과정을 통해 성도들에게 복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치자, 제자훈련에 들어오는 성도들의 수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성도들은 제자훈련을 통해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일을 삶으로 표현하는 일에 집중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더 많은 훈련의 열매가 맺혀 김 목사 스스로도 제자훈련에 대한 확신이 커졌다.
사실 봉선중앙교회 제자훈련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김효민 목사가 부임한 후 2년 정도 지나 교회에 어려움이 생겼다. 당시 교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몇몇 분이 잘못된 교리를 배워와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인데, 교회에서 계속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강요한다”며 성화를 부인했다. 당시 김 목사는 훈련과 설교에 이르기까지 목회 사역에 대한 강도 높은 시험을 받았다.
그때 김 목사는 어려움에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복음만 전하고 훈련하며, 기도하고, 철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제자훈련 받은 분들이 훈련을 통해 분별하는 힘을 갖게 돼 자연스럽게 문제가 일단락됐다. 김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놀라운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그 가운데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아 휩쓸린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김 목사 옆에서 큰 힘이 돼 줬고, 성도들은 묵묵히 기도하며 그 시간을 버텨 냈다고 한다.
김 목사가 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훈련받은 성도들이 말씀을 기준 삼아 분별할 힘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이 일을 통해 김 목사는 목회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으며, 제자훈련은 목회의 우선순위에서 절대 밀려서는 안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봉선중앙교회 제자훈련 자세히 들여다보기
2010년 1월부터 시작한 성장반은 13기, 2012년에 시작한 제자반은 5기까지 진행됐다. 성장반은 현재 200명 정도 수료했고, 제자반의 경우 76명이 수료했다. 현재 김효민 목사는 제자반을 주중 3회에 걸쳐서 진행한다. 주일 오후 3시 30분반, 토요일 새벽 6시반, 평일 저녁 7시 30분반에 남자제자반, 여자제자반을 로테이션해 운영한다. 왜 훈련 시간을 고정하지 않고 변경해 진행하는지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김 목사는 “올해 시간이 맞지 않아서 훈련받지 못한 사람이 내년에는 시간 때문에 훈련받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 월요일에 제자반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안수집사 중 한 분이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아 이같이 제자반을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월요일은 목회자가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시간을 내서 헌신하고, 성도의 입장에서도 담임목사가 자신들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하니 탄력적 시간 운용으로 인해 힘은 들지만 훈련을 통한 은혜는 배가 된다고 했다. 이처럼 담임목사 혼자 3개 반을 운영하며, 훈련 목회의 본질을 성도들과 함께 세워 가기 위해 노력하는 봉선중앙교회는 제자훈련에 집중하는 교회로 변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봉선중앙교회만의 특별한 제자훈련 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김 목사는 다른 목사님들과 별다르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며 훈련을 마치고 떠나는 1박 2일 엠티 장소가 남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장반은 손양원 목사님의 얼이 담긴 여수 애양원과 손양원 목사순교 기념관, 제자반은 전남 신안군 증도면에 위치한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을 찾는다.
같은 수련회라고 해도 실제 제자의 삶을 사신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차원에서 이 같은 엠티를 실시하는데, 반응이 놀랍다고 한다. 엠티를 통해 훈련받은 삶에 대해 간증하고,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나약함을 나누며, 회복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시간을 가진 후 수료식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니 성도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훈련받겠다는 고백이 나왔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제자훈련에 대한 동기 부여로, 재생산의 원리에 입각한 간증만 한 것이 없다며 엠티를 적극 추천했다.
현장이야기를 취재할 때마다 각 교회 목사님이 내 주시는 과제물에 대해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봉선중앙교회 제자훈련만의 특별한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질문했다. 김 목사는 2권 14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진행할 때 과제로 유언장 쓰는 과제를 내 준다고 한다. 훈련생들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심어 주고, 이 땅에서의 삶을 정리할 때 다음 세대에게 남겨줄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숙제를 마치고 나면 반드시 가족들 앞에서 읽어 보게 한다. 물론 가족마다 반응은 다르지만,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천국을 소망하는 과제를 통해 얻는 유익이 참 많음을 보게 된다. 또 다른 특별한 숙제는 3권 7과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을 마친 후, 시편 23편, 시편 121편으로 ‘자녀 축복기도문’을 만들어 가정 거실 벽에 부착하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의 목자시니 ○○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의 ‘나’, ‘너’라는 구절에 자녀의 이름을 넣어 작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부모는 말씀으로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자녀를 축복하고, 이런 부모의 모습을 눈으로 본 자녀는 믿음으로 자라게 된다.
3권 9과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할 때는 주재권 양도 목록을 만들어 양도 각서를 쓰게 한다. 이를 통해 훈련생들은 하나님 앞에서 내 것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이 같은 숙제 하나하나가 주님께로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임을 생각하면 의미 있는 과제임이 확실하다.


제자훈련을 통해 이렇게 변했어요!
훈련을 통해 변화된 성도의 이야기만큼 가슴 설레는 일도 없다. 과연 봉선중앙교회 성도들은 제자훈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삶은 훈련을 통해 어떻게 변화됐을까?
봉선중앙교회 제자훈련 1기 수료자 이영운 장로에게 제자훈련 목회 철학을 세워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물었다. 이 장로는 “목사님을 통해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성경적으로 목회하시려고 훈련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어떻게든 순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장로에게 훈련받기 전과 훈련받고 난 후의 소감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이 장로는 이런 답을 했다.
“훈련받기 전에는 솔직히 내 생각, 내 경험이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훈련을 통해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자 모든 것이 감사한 일임을 알게 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무슨 일이든 무뎌지기 마련인데, 신앙생활을 오래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훈련된 사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데, 제자훈련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목사 옆에서 동역하는 장로의 고백은 제자훈련 목회 철학을 현실에서 증명하는 것이다. 평신도를 깨워 목회의 동역자로 세우는 놀라운 일은 이 장로의 동역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이 장로는 올해 시작하는 1기 사역반 훈련에도 제일 먼저 신청했다고 한다. 훈련받은 자를 통해 일어나는 놀라움은 또 다른 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중고등부 교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은이 집사는 특이하게도 제자반을 2번 수료했다. 한 번 수료하기도 힘든 제자반을 어떻게 두 번이나 수료했느냐는 질문에 김 집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사실 처음 받을 때는 은혜받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끝나자 다시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나 자신을 보며 ‘안 되겠다, 다시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어 훈련을 재신청하게 됐고, 두 번째 훈련을 받으며 삶의 방향을 확실히 바꿨습니다.”
실제로 김 집사는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주말에 학생들이 많이 오다 보니 삶의 중심이 세상 사람들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훈련을 통해 삶의 방향이 전면 수정됐고, 이후 새로운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바로 탈북민을 섬기는 일이었다. 사실 광주지역에서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가 열리는 곳이 봉선중앙교회다. 광주지역에서 통일에 대한 꿈을 갖고 탈북민을 섬기는 일과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를 여는 것이 참 신기했는데, 이는 김 목사가 교회 개척 때부터 갖고 있던 비전이라고 한다.
북녘 땅을 바라보며 복음을 통한 통일을 꿈꾸던 김 목사는 우연한 기회에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담당자로부터 제안을 받아 이 사역을 감당하게 됐다. 이런 김 목사의 비전이 훈련을 통해 평신도에게 심어진 것을 보면 훈련을 통한 열매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다.
찬양대장으로 섬기고 있는 박종신 집사는 제자훈련을 어떻게 정의하겠느냐는 질문에 “제자훈련은 등불입니다”라는 답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더니, 훈련을 통해 영적인 눈을 새롭게 떴기 때문이라고 했다. 훈련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도 예수님의 빛을 비출 수 있다는 자긍심이 생겼으며,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움 가운데 살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박 집사는 40대 후반 늦은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는 새신자 교육 과정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40대 후반에서야 고백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교회 내 동역자들과 친밀한 교제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훈련에 동참했다. 박 집사는 훈련을 통해 사람은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다음으로 찬양대와 소그룹 리더로 섬기며 헌신하고 있는 정순옥 권사를 만났다. 정 권사는 만 7년 동안 매주 고흥에서 광주를 오가며 교회를 위해 섬기고 있다. 누가 봐도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그에게 제자훈련은 어떤 과정이었는지 물었다.
정 권사는 “성장반 훈련을 통해 예수님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후 제자반을 통해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됐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주 넘어지고 근심에 쌓였던 제가 오직 예수님 한 분이면 만족하다고 고백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매주 원거리를 오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통해 변화됐다는 고백을 들으니, 성령께서 행하시는 훈련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이는 찬양대와 소그룹 리더로 봉사하시는 박광호 집사였다. 박 집사에게 제자훈련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그는 놀라운 고백을 했다. 제자훈련 때문에 서울로 파견 근무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직장의 과다 업무로 더 이상 훈련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결코 포기할 수 없어서 서울로 파견 근무를 신청했어요. 서울 근무는 퇴근 이후의 시간과 주말의 쉼이 보장됐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 훈련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근무하고 주말에는 광주에 내려와 훈련을 참여할 수 있었어요. 2년간 서울과 광주를 왔다 갔다 하며 훈련에 임했는데,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시간 없음을 탓하며 제자훈련을 미루는 경우가 있는데, 박 집사의 고백을 통해 주님의 말씀대로 무장한 사람이라면 시간 없음을 탓하지 않고,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훈련에 임한다는 사실을 목격하며 훈련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됐다. 결국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느냐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 나는 것이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십니까?
부목사 시절 김 목사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질문은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십니까?”였다. 한 선교 단체의 20대 젊은 간사의 질문에 김 목사는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당시 김 목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길 소원합니다”였다고 한다.
김 목사는 주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이 길을 나섰는데, 그렇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했다. 이후 그는 이 질문에 다시 한 번 자문자답하며, 결국 주님 앞에 항복하고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 결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김 목사의 마음을 담은 고백 이후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김효민 목사에게 제자훈련은 바로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인생임을 깨닫게 해 준 훈련이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통해 성도들도 은혜를 받지만, 목사가 먼저 은혜를 받는다고 김 목사는 고백했다. CCC에서 훈련받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25년째 제자훈련 사역을 하고 있는데, 김 목사는 누가 뭐래도 목사가 스스로 갱생하는 길은 제자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김 목사의 이런 자기 부인은 성도들로 하여금 새로운 비전을 보게 했다.
봉선중앙교회 주변은 고층 아파트 단지들과 학원들이 많아 목회하기 좋은 지역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영적으로 피폐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대부분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분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기에 그만큼 영적 갈망이 부족하다. 그래서 김 목사는 이 지역을 섬기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교회 앞 잔디밭 주차장을 개방해 주민들이 마음껏 이용하게 하고, 성탄절 헌금은 지역사회로 환원해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성금으로 사용한다. 그뿐 아니라, 대한민국 남서쪽에 자리 잡은 작은 지역 교회지만 쥬빌리기도회를 열어 대한민국을 품고 기도하는 비전을 성도들과 함께 공유하는 장도 마련했다. 이 모든 것이 훈련을 통한 열매이자 결과물이라고 김 목사는 힘줘 말한다.
김 목사는 이런 가시적인 결과물들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제자훈련을 하겠다고 고백했다. 그는 훈련을 통해 변화된 성도들을 보면서 “나는 행복한 목사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또한 주님의 제자를 세우는 것은 포기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이 길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길이 이 길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해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김효민 목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이 길을 봉선중앙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함께 걸어갈 때 세속화되는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쓰임받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고백했다.
교회는 여전히 세상의 희망이다. 현재 한국의 그리스도인 수는 천만이라고 한다. 한국 교회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한다면, 사회는 달라지고 복음의 능력을 세상에 뿌릴 수 있을 것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에 위치한 지역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사역을 보니, 왜 교회가 세상의 희망인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김효민 목사와 봉선중앙교회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들을 기대하며 제자훈련 목회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은혜가 이곳에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Vol.211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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