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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4 - 소그룹 리더를 보살피고 소통하라

2017년 11월 박충기 목사_ 싱가포르 나눔과섬김의교회

소그룹의 중요성은 이미 한국 교회 안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각 교회별로 전통적인 소그룹인 구역을 활성화시킨다든지, 혹은 G12, D12, 순, 다락방, 목장 등의 이름으로 새롭게 소그룹을 세우는 교회가 늘어 가고 있다. 우리 교회는 ‘가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소그룹을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 15년 가까이 ‘가정교회’를 통해서 소그룹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했다. 방법들이 성공할 때도 있었고, 실패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한 가지 사실만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소그룹을 살리기 위해서는 소그룹 리더를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방식으로 소그룹을 모이게 하든지 소그룹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소그룹 리더를 세우지 않고는 어떤 소그룹도 세워지지 않는다. 소그룹을 활성화시키는 좋은 방법이 있더라도 소그룹 리더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소그룹 리더를 세우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 사항에 목회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훈련으로 소그룹 리더와 소통하라
우리 교회가 소그룹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인들이 평균 2년 6개월이면 바뀐다는 점이다. 교인으로 등록하고 3년이 못 돼 싱가포르를 떠나면서 함께 교회를 떠난다. 그렇다 보니 새가족반 한 달, 성숙반 3개월, 그리고 제자훈련 1년, 이렇게 우리 교회의 기본적인 훈련과정을 마치면 싱가포르 체류 기간의 절반이 지나간다.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소그룹 리더, 가정교회 가장으로 세워지면 1년 정도 사역하거나, 1년도 사역을 못하고 교회를 떠나게 된다.
이렇게 소그룹 리더가 없어서 소그룹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싱가포르에 오기 전 한국이나 미국,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 제자훈련을 받거나, 소그룹 리더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 교회에 등록하면 가정교회 가장으로 빨리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 경우 이전 교회에서 순이나, 목장 등 소그룹을 인도한 경험과 이전 교회의 비전을 바탕으로 소그룹을 인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소그룹 리더들이 각자의 생각과 경험으로 소그룹을 인도하게 돼 배가 산으로 가게 되는 위험에 빠진다.
실제로 내가 싱가포르에 오기 전에 이런 혼란이 교회 안에 있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소그룹 리더를 세우기 전에 먼저 그들과 1년 과정의 제자훈련을 함께한다. 우리 교회에 오기 전에 타 교회를 다니면서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마쳤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나와 제자훈련을 다시 하도록 설득한다.
‘교회가 바뀔 때마다 제자훈련을 해 왔습니다.’ ‘제자훈련만 벌써 세 번째 받았습니다.’ ‘소그룹 인도법이나 귀납적 성경공부를 이미 했습니다.’ ‘목사님의 의중을 살펴서 겸손하게 소그룹을 섬기겠습니다.’
여러 가지 말로 또다시 제자훈련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말로 권유한다. “제자훈련은 성경공부를 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훈련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교회에서의 제자훈련은 교회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입니다. 교회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면 소그룹이 연합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모든 지체가 한 몸이 돼야 합니다.”
나는 제자훈련을 통해 그들과 한 몸이 되는 데 주력한다. 단순히 비전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데 집중한다. 상대방의 기질을 알고, 신앙 이력을 알아서 소통하게 될 뿐 아니라 함께 비전을 공유하면서 깊이 소통하게 된다. 소그룹 리더와 소통하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지시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건강한 소그룹이 세워지지 않는다.  


소그룹 운영방식, 리더에게 위임하라
모든 성도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졌다. 그래서 각 지체의 분량대로 섬기라고 하지 않았는가(엡 4:16). 모든 성도가 똑같지 않듯이 모든 소그룹도 똑같을 수 없다. 소그룹마다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데도 천편일률적인 순서로 소그룹을 진행하는 것은 소그룹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나는 어떤 소그룹은 큐티 나눔을 중심으로, 어떤 소그룹은 권별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또 다른 소그룹은 주일 설교를 나눔으로, 그리고 어떤 소그룹은 지난 한 주간 동안 삶을 나눔으로 소그룹을 진행할 수 있도록 소그룹 리더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이럴 때 소그룹 리더들은 더 책임감을 느껴, 내게 어떤 방식으로 소그룹을 인도할지 문의해 온다. 나는 멘토링해 주지만 결정은 소그룹 리더가 하도록 돕는다. 심지어는 소그룹 리더들의 ‘재교육 프로그램’도 소그룹 리더들이 스스로 세울 수 있게 했다. 우리 교회의 리더 재교육 시간은 주일 오후에 있다. 하루 종일 교회를 섬긴 후에 모이는 시간이라 무척 피곤하다. 아무리 좋은 강의를 해도, 심지어는 유명 강사를 초청해도 집중도가 떨어졌다.
소그룹 리더 중에서 대의원을 10명 투표로 뽑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운영위’라는 이름으로 모든 소그룹 리더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했다. 나는 그 ‘운영위’를 이끌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이끌어 가게 했다. 그리고 ‘운영위’ 시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과연 이들이 올바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앞으로 목사에게는 발언권도 주지 않고, 내 목회 계획은 무시당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들은 나와 소통을 해 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믿어 준 만큼 그들도 나를 신뢰해 줬다. 그래서 나 혼자 기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교육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리더로 자라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며, 전체 소그룹 리더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재교육 시간에 집중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소그룹 리더에게 감정 분출구를 제공해 주라
목사로서 교회를 섬기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인내’임을 배운다. 아무리 엄청난 은사를 가진 목사라도 인내하지 못하면 교회를 섬길 수 없다. 그래서 목사들은 많은 것을 참고, 또 참으면서 사역한다. 소그룹 리더도 마찬가지다. 작은 그룹이라고 해서 리더가 져야 할 짐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들도 동일하게 많은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가 탈진하듯이 리더들도 탈진한다. 목회자가 교인들과 아무리 관계를 잘 맺고 소통하며 지내더라도, 목회자끼리 만나서 감정의 쓰레기들을 분출해야 한다.
사역을 하면서 갖게 되는 상한 감정과 그 감정의 쓰레기들을 분출할 수 있도록 소그룹 리더들끼리 삼삼오오 묶어 줬다. 처음에는 현재 가정교회로 모이는 것도 시간이 없는데, 또 다른 가정교회로 모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모이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리더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동병상련의 아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며 좋아한다.


소그룹 리더의 편을 들어 주라
소그룹 안에서는 갈등과 분열이 빈번히 생긴다. 신학 훈련을 받고 오랫동안 목회를 해 온 목사가 섬기는 공동체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는데, 소그룹 리더들이 섬기는 공동체 안에 왜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갈등이 깊어지기 전에 중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심방 사역의 80%를 소그룹 리더를 만나는 데 쏟는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소그룹 리더들이 만나자고 할 때는 우선순위를 거기에 둔다.
월요일에도 개인적인 쉼을 갖고 난 뒤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다면 어떤 소그룹 리더를 만날지 생각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먼저 연락해서 만난다. 목사의 개인적인 쉼이 없어진다고 우려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만남을 즐긴다.
소모되는 시간이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충전되는 시간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소그룹 리더로 동역해 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한다. 잘한 일들을 주로 이야기하고 칭찬하고 격려한다. 잘못한 점이 있더라도 지적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소그룹 안에서 일어난 갈등이 소그룹 리더에게 더 많은 잘못이 있더라도 소그룹 리더의 편을 들어준다. 이것은 편애가 아니다.
분쟁과 갈등은 어느 한 편의 잘못으로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 쌍방의 과실로 분쟁이 생기는데, 그때 어느 쪽이 더 많이 잘못했는지 그 책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느 쪽도 잘못을 충고한다고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쟁과 갈등이 일어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충고를 한다 해도 소용이 없다. 소그룹 리더의 편을 들어 주면 그들은 안정감을 갖게 된다.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상황을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용서를 구하든지, 인내하든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해결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내가 평소 전하는 설교와 강의를 통해 이미 모든 방법을 다 가르쳐 왔다. 다만, 갈등과 분쟁에 휘말리면 이것을 생각해 내는 여유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소그룹 리더에게 소그룹의 본질을 분명히 하라
성경공부, 전도, 양육, 선교, 봉사, 구제, 예배 등 소그룹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대그룹에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대그룹에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교제다. 교제는 ‘연합’을 이루는 가장 핵심 되는 조건이다.
결국 소그룹으로 모이는 근본적인 목적은 교제를 통한 ‘연합’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잘하면 성숙한 소그룹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숙을 은사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에는 은사가 많았다. 하지만 바울은 그 교회가 미성숙한 교회였다고 말한다(고전 3:1). 은사와 성숙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에게 은사가 강하게 드러나면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특별히 가르치는 은사가 강한 리더들은 자신이 성숙하다고 생각한다. 리더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리더가 섬기는 소그룹일수록 분쟁과 갈등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봤다. 마찬가지로 소그룹이 많은 사역을 하게 되면 성숙한 소그룹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소그룹 구성원들의 연합이 성숙의 척도다. 
큐티를 깊이 나누고, 기도를 오랫동안 하고 싶어 하는 성도와 반대로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초신자들이 함께 있을 때 소그룹 안에 갈등이 생긴다. 어느 쪽에 중심을 둬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러나 ‘연합’에 목표를 두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배려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소그룹 안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던 성도도, 초신자들도 함께 성장하게 된다.
어느 새가족에게 가정교회를 소개시켜 줬다. 모태 신앙이라고 소개해 준 새가족의 남편이 가정교회에 온 첫날,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선언했다. 순간 모든 가정교회 식구들이 당황했다. 그날부터 매번 모일 때마다 그 형제는 교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성경의 난제들을 질문하면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모임 분위기가 엉망이 됐다. 매번 성경공부 진도도 제대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진도를 나가지 못하더라도 그 형제의 말을 경청해 주고, 반응해 줬다. 다른 소그룹 구성원들 중에서 그 형제를 향한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그 소그룹은 끝까지 그 형제를 가족으로 받아 줬다. 그 형제는 1년 만에 다시 싱가포르를 떠났다. 떠나면서 그 형제는 가정교회 식구들 앞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지금 날라리 신자이지만 더 이상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됐고, 나아가 자신이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날라리’ 신자임을 고백했다.
존 스토트는 그의 책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서 구원을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봤다. 첫째는 죄 사함을 받는 것, 둘째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셋째는 교회를 통해 교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내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자기로부터 해방되고, 사람과 교제하는 관계적인 삶을 살 때 진정한 구원이 이뤄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소그룹은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소그룹은 교회를 이루는 하부 구조가 아니다. 소그룹은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진 유기체다. 우리는 소그룹을 통해서 자기로부터 해방돼 타인과 관계를 맺는 진정한 구원을 이루게 된다. 이 소그룹의 첫걸음과 마지막에 소그룹 리더들이 있다. 이들에게 집중하지 않고 어떻게 소그룹을 세울 수 있겠는가.





박충기 목사는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Reformed Seminary(D.Min.)에서 가정교회를 통한 평신도 리더십을 연구했다. 현재, 싱가포르 나눔과섬김의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Vol.218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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