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디사이플 목사를 깨운다 목회자와 성도

목회자와 성도

잊히지 않는 제자, 작은 자가 천을 이루리라

2019년 06월 오석준 목사_ 통영 한우리교회


오래전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받을 때다. 그날 고(故) 옥한흠 목사님으로부터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사 60:22)는 말씀을 들었지만, 솔직히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그리 와닿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의 제자훈련 ‘외길 목회’를 돌아보니, 작은 자 한 사람이 천을 이룬다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깨달았다.


옥한흠 목사의 애제자 이수정 집사

강의 중에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생전에 가장 기억나는 성도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셨다. 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제자훈련한 수많은 성도들이 옥 목사님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겠지만, 옥 목사님께서는 사랑의교회 개척 초기 어느 대학교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는 이수정 집사가 가장 생각난다는 말씀을 하셨다. 

주일마다 곱게 한복을 입고 나오는 자매가 있었는데, 인생이 불행 그 자체였다고 한다. 외모도 초라하고, 배운 것도 없었던 이 집사는 젊은 날 고생을 많이 했다. 혼자 낮에 부엌에서 일하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복음을 듣다 거듭나는 은혜를 체험한 그녀는 사랑의교회에 스스로 나온 경우였다. 

그 자매는 강남의 기라성 같은 부인들이 가득 찬 사랑의교회에서 기죽지 않고 훈련받은 후 집사로서 잘 섬기며 떡을 사 들고 강남 시립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위로해 주곤 했다고 한다. 결국 몸이 너무 약해 40대 초반에 병원에서 약봉지를 들고 옥 목사님 댁에 왔다가 옥 목사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당시 사랑의교회 교인이 2백 여 명 정도였는데, 모두 한마음이 돼 3일 동안 옥 목사님 댁에서 장례를 정성스럽게 치뤘다고 한다. 


목회자에게 잊히지 않는 한 사람

옥 목사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제자훈련을 하며 거쳐 간 많은 훈련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다. 지금은 어느덧 중년의 집사님이 되셨지만, 당시 새파란 청년이었던 박순민 집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 청년과의 만남은 내가 1996년 부임하고 난 후, 약 1년 뒤 그의 집이 교회 옆으로 이사오면서부터다. 당시 이 청년은 영남대학교 법대에 재학 중이었는데, 얼마 후 휴학하고 입대했다.

1997년 여름 어느 주일날, 당시 파주 쪽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강론 전 그 지역 군부대에 있는 아들들을 지켜 달라고 통성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박순민 청년은 폭우로 강에 쓸려 내려가는 중 군부대 예배당 지붕에 올라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살았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청년이 제대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신실한 줄 알았던 이 청년이 제대 후 신앙생활은 뒷전이고, 오토바이를 타고 온 천지를 돌아다니며 망나니 같은 짓을 하다 큰 사고를 당해 거의 보름간 혼수상태 속에 사경을 헤매게 됐다. 

어느 날 심방을 가서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왔는데, 이튿날 그의 어머니로부터 “목사님이 기도하고 난 뒤 아들이 깨어났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 사건이 그 청년에게 준 하나님의 메시지였는지 모르겠지만, 이후 그의 삶은 정말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적 씨감자가 됐던 청년들의 변화

나는 교회 부임 후 평생 예배만 드리고 신앙생활 하던 장년들을 온전한 제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갖고 제자훈련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대신 15명 여의 청년들에게 눈을 돌려 이들을 잘 훈련시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야겠다고 목회 방향을 궤도 수정했다.

그렇다고 교회에 많은 인적 자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청년들이 소위 ‘영적 씨감자’였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너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하다” “너 한 사람이 훈련받고 어떻게 변화되느냐에 따라 네 인생과 교회가 달라진다”(사 60:22)라는 비전을 매주 제자훈련을 통해 심어 주며 훈련해 나갔다. 

그러자 청년들이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전과 안목, 생각과 기도가 달라졌고, 무엇보다 자신이 맡은 기관에서 충성과 헌신이 달라졌다. 그중 박순민 청년의 변화는 눈에 띄게 두드러졌는데,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얼마나 열정적으로 주일학교 교사를 섬겼는지 토요일이면 학교 입구에 나가 아이들을 전도했다. 주일 아침 일찍 아이들을 만나 자신의 작은 차량(아토스)에 무려 15명을 태우고 교회로 데려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런 열정 덕분에 조그만 시골 교회 주일학교가 그 지역에서 가장 부흥되는 아름다운 일이 있었다.


학원 복음화 사역에 헌신하는 제자

이 청년이 졸업할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여러 곳에 입사 지원을 했는데, 거의 동시에 3곳에 합격했다. 그런데 어느 날 찾아와 제주도의 탐라대학교 교직원으로 가고 싶다며 나에게 상담을 청했다. 나는 너무나 의외여서 “왜 꼭 제주까지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학원 복음화가 꿈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기특해서 그의 진로를 축복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청년이 그의 소망과 비전대로 탐라대학교에서 캠퍼스 사역을 한 것이다. 이 청년의 비전이 바로 그간 제자훈련 때 심어졌던 ‘이사야 60장 22절’의 말씀이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 청년은 작은 자가 천을 이룰 것이란 말씀을 붙들고, 홀로 제주에 와 고군분투하며 사역을 감당했다. 그렇다고 동역자가 있었던 것도, 교회에서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혈혈단신,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홀로 전도하며 양육하며 대학생들을 섬기고 캠퍼스 사역을 펼쳤다. 

그가 제주도에 간지 몇 년 후 마침 어린이날이라 안부도 궁금하고 선물도 보내고 싶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과 한라산 등반 중”이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린이날이면 아이와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날만큼은 아이와 같이 좀 놀아 줘야지?”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자녀 사역도 중요하지만 이 사역도 중요하다”라는 말을 했다. 이 청년은 이렇게 제주에서 홀로 캠퍼스 사역을 8년 동안 하며 많은 열매를 맺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천안의 나사렛성결대학교로 전근했다.

그는 신학교로 이직했지만, 그의 비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비전대로 캠퍼스 사역을 했고, 출석 교회에서도 평신도지도자로서 열심히 한 사람, 한 사람을 훈련해 세워 나갔다. 

천안에 온 초창기, 자신같이 작은 자 한 사람이 천 명을 이룰 것이라는 거대한 비전을 품고 대학생 사역에 전념했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에서 새가족반을 책임지고, 셀 리더로서 셀을 잘 섬기고 있다. 그리고 신천지에서 상처받고 파괴된 영혼들을 복음으로 다시 세우는 평신도지도자로서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또한 방학 때마다 선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해외 선교지를 방문해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 그가 천안에 간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매너리즘에 빠질만한 세월이지만 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천을 만든다는 비전대로 초지일관, 외줄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는 내 제자지만 나를 부끄럽게 하는 제자다.


보고 싶고 그리운 믿음을 지켜 낸 제자들

지난주 3년 만에 밴드를 열어 보았다. 그런데 ‘당리청년들’이란 밴드가 그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 그 청년들은 세월이 흘러 지금 모두 결혼해 이제 40대 중후반 장년들이 되었고, 장로와 집사, 사모로, 한국과 미국에서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 감히 자부하건대 이 중 한 명도 일탈한 청년이 없었다. 

이들 역시 박순민 집사처럼 인생에서 세상의 여러 유혹과 씨름했고, 같이 발버둥치며 믿음을 지켜낸 신실한 자들이다. 그래서 지금 그 열매를 보고 같이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요, 나 개인으로선 아름다운 목회의 추억이기도 하다. 이런 은혜 밑바탕에는 제자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립고 모두 보고 싶기도 하다.

제자훈련이 모든 목회의 왕도는 아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한 생명에 대한 거룩한 부담과 비전을 준다. 지극히 작은 나 하나지만, 천을 이룰 것이라는 이 거룩한 비전이 그 영혼에 오롯이 담기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오늘 소개한 박순민 집사 역시 그렇다. 그가 걸어가는 길을 보고, 한 사람이 천을 이룬다는 거룩한 비전으로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제자훈련이 되길 소망한다.



오석준 목사는 부경대학교 기계공학과,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했으며, 리폼드신학교(D.Min.)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해운대제일교회 부목사로 시무하다가 부산예림교회를 개척하고, 경산당리교회에서 담임 사역을 한 후, 2005년 8월부터 통영 한우리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Vol.236 2019년 6월호

한줄나눔
  • 한줄나눔 :
    * 로그인 하셔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 박순민 :
    목사님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챙겨야 할 사람과 할일들이 많아짐을 느낍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예배하게 된 통로이십니다. 목사님의 포기하지 않았던 사랑이 제 마음을 예수님께로 열게된 계기가 되었었죠. 천국에서 기뻐하시는 주님께서 목사님을 위해 예비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확신하며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