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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 * 고통과 약함 속에서 드리는 감사와 반성

2016년 12월 이인호 목사_ 더사랑의교회

교회를 개척하고 한 4~5년쯤 됐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지금은 천국에 계신 고(故) 옥한흠 목사님께 수시로 메일을 드렸는데, 목사님은 내게 짧은 답장을 보내 주시곤 했다. 언젠가는 목사님이 직접 찍으신 사진과 함께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한마디 말씀을 보내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목회는 평생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라는 말씀이었다.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 말씀이 지금까지 뇌리에 남는 것은 그 누구보다 성공적인 목회를 하신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때로 목회가 고달플 때면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위로를 얻는다.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신경 쓸 일이 생기고, 자신감을 가질 만하면 기를 꺾는 사건들이 생긴다. 한 성도와의 어려운 관계를 잘 풀었다 싶으면 또 다른 관계의 소홀함이 발목을 잡고, 교회가 건강하다 싶으면 내 건강이 흔들렸다.
사랑하는 성도들과의 행복감에 빠질라치면 외적인 문제가 짓누르고, 외적으로 성장하는 즐거움이 밀려올 때면, 성도들의 힘든 표정에 웃음기가 가시게 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늘 목표에 못 미치는 나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왜 나같이 부실한 사람을 목회자로 부르셨을까’ 하는 자격 없음과 후회감이 담긴 질문을 하게 된다. 개척하고 13년째 살얼음판 위를 걸어오면서 가족처럼 가까이, 그리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약함과 갈등의 고통에 대해 느끼는 소감을 몇 가지 나누려고 한다.


첫째, 고통은 늘 ‘네 주제를 파악하라’고 말한다
아내와 결혼할 때 몸이 좋지 않아서 지금보다 몸무게가 10kg가량 덜 나갔고, 얼굴은 거무스름하고 윤기가 없었다. 참 볼품이 없었다. 지금도 그때 결혼식과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 아내가 어찌 이런 사람과 결혼해 줬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신혼 시절에 찍은 사진을 우리 교회 목사님들에게 보여 줬더니, 이구동성으로 “정말 사모님이 대단한 결정을 하셨다”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나도 내 딸이 당시 나 같은 남자를 데려오면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런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입으로는 하나님께서 과분한 아내를 주셨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내가 아내를 구제해 줬다고 생각하곤 했다. 세월이 이만큼 흘러서야 조금씩 주제 파악을 하는 것 같다. 
나는 목회 현장에서 이와 동일한 실수를 저질러 왔다. 내 숨은 속내를 밝히자면, 나는 훌륭한데 성도들이 나를 받쳐 주지 못해서 교회가 빨리 성장하지 못한다는 마음을 한편에 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일어나면 나는 옳았고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했으며, 문제가 생기면 은근히 성도들 탓을 했다. 그들이 부족하고 틀렸으니 그 어리석음과 틀림을 참는 일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때론 목사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고통을 통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내 주제를 파악하게 하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중 80% 이상은 나의 고집, 조급함, 야망, 미성숙함으로 인한 부딪침, 갈등, 고뇌에서 기인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제 파악을 조금씩 하게 하시니까 마음도 조금씩 넓어지고, 생각도 유연해지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되고, 성도들을 진심으로 동역자로 인정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법도 배우게 됐다.
1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조금씩 드는 생각은, ‘성도들이 그동안 고집 세고 미성숙한 목사를 정말 많이 참아 줬구나’ 하는 것이다. 부부 관계에서 자신이 늘 손해 보는 결혼을 했다고 믿고 사는 사람은 평생 불행하다. 마찬가지로 성도보다 더 뛰어나서 늘 손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는 불행하다. 고통이 가져다주는 축복 중의 하나는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게 해 주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시원찮은 존재인지를 알게 되니, 판단과 불평 대신 감사가 많아진다. 그저 성도들이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 있어 주니 고맙고, 그래서 그들과 마음을 나누며 동역자가 돼 가니 살얼음판 같은 목회 여정을 걸어가면서도 그들이 있어 든든하다. 고통의 축복이 아니었으면 늘 손해 보고 희생한다는 착각으로 목회 인생을 소비할 뻔했다. 


둘째, 약함은 늘 나더러 내려놓으라고 한다  
약골로 태어나 자주 병을 앓고, 지금도 환절기엔 의례적으로 병치레를 하는 체질이라 조금만 무리하면 몸에 이상을 느껴 멈춰야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때마다 건강한 사람들이 부러웠고,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더 많은 일을 하고, 그러면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러다가 작년에 좀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느껴, 몇 개월간 힘들어했다. 한참 달려야 하는 50대 중반에 주춤거리는 내 처지가 한심했다.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건강하면 더 잘할 것 같으냐? 네가 지금보다 건강하고 컨디션 좋고 상황이 좋을 때 얼마나 잘했느냐?’ 이 질문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왜냐하면 돌아보니 폐결핵과 불면증으로 시달리던 젊은 날에 목숨 걸고 주님을 붙잡았고, 그때 주님의 은혜가 내 안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개척 초기 새벽기도를 할 체력이 안 돼, 모기만 한 목소리와 창백한 얼굴로 새벽 강단에 서서 간신히 설교하고, 며칠 동안 소화가 안 돼 죽을 먹어야만 했던 시절에는 새벽기도회가 부흥하고 더불어 주의 은혜로 교회가 날마다 성장했었다.
한번은 서울로 교회를 다니시며 새벽에만 나오던 어느 성도님이 “목사님께서 너무 약해서 자신이 돕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교회 등록을 한다”라는 말까지 하셨다. 그리고 당시 많은 성도들이 연약한 내게 긍휼한 마음을 품었다. 약하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기도에 전념하면서 강단에 서서 간절한 마음으로 설교할 때에 성도들 안에 치유와 위로가 가득히 임했던 지난날의 은혜들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들을 하자 ‘내가 약해서 목회를 못한다’라는 생각은 사탄이 주는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대부분 건강과 체력이 좋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우호적일 때, 그래서 모든 일에 자신감과 열정, 그리고 집중력을 쏟아 부을 수 있을 때에 목회의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합리적인 논리 안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믿음의 논리에서는 맞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입으로는 성도들에게 오직 믿음으로 살라고 설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내가 가진 능력에 따라 모든 일들의 결과가 달라진다고 이성적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약함을 받아들이고, 약함이 주는 은혜를 누리기로 결정했다. 약함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것들, 즉 나의 계획과 시간표 그리고 꿈 등을 주님께 맡겼다. 약함 때문에 나를 품에 안아 주시는 주님을 더 깊이 바라봤다. 약함 때문에 성령님께 더욱 간절히 의지했고, 매 순간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성령보다 내 지혜를, 성령보다 내 강함을 더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성령님을 사모하고 그분을 의지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그 약함의 시간이 날마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약함 때문에 나 자신을 내려놓으면 놓을수록 주님께서는 내 안에서 점점 더 강해지셨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고, 주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약함을 좋아하지 않지만,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웃으며,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한다.  
 
셋째, 고통은 인생의 중간고사, 나를 반성하게 한다
몇 주 전 설교 준비를 하면서 허랑방탕하게 살다 큰 흉년이 들어서 궁지에 빠진 탕자의 모습을 묵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 탕자처럼 삶에 갑자기 ‘큰 흉년’이 닥치면, 과연 내 인생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봤다. 갑자기 중병에 걸린다면, 갑자기 유혹에 미끄러져서 넘어진다면 과연 누가 내 곁에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랑은 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늘 마음만 있지 지나치며 인사하는 것 외엔 일 년이 지나도록 마주 앉아 밥 한 번 못 먹고 깊은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한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알맹이를 잃어버린 채 쳇바퀴를 돌 듯 바쁘게만 살았구나’ 하는 깊은 반성을 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인생의 ‘큰 흉년’은 우리 삶의 중간고사라는 사실이었다.
한참 상가 건물에 교회를 개척해서 성장해 갈 때에 연말에 누군가 갑자기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면 정말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많은 분이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고 교회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아, 저분을 더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살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렇게 연말마다 후회하고 반성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이 나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하고 다시 더 중요한 것을 향해 나아가게 해 주는 것 같다.
초겨울이 되고 낙엽이 지는 계절이 되면 겸허한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보듯이, 인생의 고통과 약함 속에서 낙엽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개척 시절과 양상은 좀 다르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외형적인 결산에 대해서는 칭찬받을지 모르지만, 심방의 보람도 부목사님들에게 빼앗기고, 제자반의 즐거움도 빼앗기고, 성도들 한 사람의 영혼 안에 있는 가치와 존귀함을 발견하면서 마음이 기쁘고 부요했던 감격까지 빼앗긴 삶을 후회한다. 이렇게 점점 성도들과의 거리를 멀게 하고, 사랑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하는 이 목회 기차를 어떻게 멈춰 세울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한다.
늘 연말이 되면 순장님들에게 반성의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를 보내는데, 언제까지 이런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얼마나 사랑했는가, 과연 천국에서 내게 다가와 고맙다고 말하며 영접해 줄 친구들은 얼마나 될까?’ 이 자신 없는 질문 앞에 그저 고개 숙일 뿐이다.
돌아볼수록 반성거리만 가득해지는 요즈음, 이렇게 부끄러운 나를 기다리시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 그분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인호 목사는 건국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더사랑의교회(구 수지사랑의교회) 담임목사와 경기 CAL-NET 총무로 섬기고 있다.

Vol.208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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