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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할 때 성령님과 청중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 화종부 목사(남서울교회)

2017년 06월 우은진 편집장

화종부 목사는 연세대학교 정치 외교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영국 에딘버러대학교에서 교회사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부 부흥의 산실인 내수동교회 대학부 전임 전도사를 거쳐 옥스퍼드 한인 교회 담임목사, 제자들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며 청년 사역자로도 열정적으로 사역했다. 이후 2012년 남서울교회 3대 담임목사로 청빙돼 지금까지 섬기고 있으며, WEC 이사장, GBT 이사, 한국피스메이커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일 시 2017년 4월 20일(목)
장 소 남서울교회 담임목사실
인 도 김지혁 목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설교학)
정 리 우은진 편집장(월간 <디사이플>)


<디사이플>은 2017년 ‘설교와 설교자’ 코너를 통해 한국 교회의 존경받는 원로 목회자를 비롯해 자신만의 설교 특징을 가진 목회자를 매월 만나 그에게 설교란 무엇이며, 설교 준비 과정과 설교의 영향력 등에 대한 담론을 듣고 있다. 그 여섯 번째 시간으로 한국 교회에 강해설교자와 청년 사역자로서 잘 알려진, 그리고 이제는 남서울교회 담임목사로서 다음 세대와 통일 세대를 준비하는 한국 교회 2세대 목회자로서 주목받고 있는 화종부 목사를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김지혁 교수가 만나 봤다. <편집자 주>




김지혁 목사 목사님은 한국 교회에서 철저한 강해설교자로 알려져 있는데, ‘강해설교’를 어떻게 규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화종부 목사 강해설교에 대한 정의는 강해설교자에 따라 그 정의가 다르고 다양하다. 강해설교는 기본적으로 성경 본문에 충실한 설교이며, 성경 본문이 직접 말하게 하는 설교라고 말할 수 있다. 청중들은 탁월한 설교자의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에 주목하기 쉬운데, 청중들의 관심이 다른 어떤 것에 머무르지 않고,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데 강해설교의 강점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다시금 본질의 회복과 성경 본문의 우선성에 대한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설교자들이 본문이 말하는 것과 다른 주제를 설교할 때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강해설교는 본문과 치열하게 씨름하여 본문이 드러내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에 포커스를 맞춰 설교한다는 강점이 있다. 사실 설교를 하면서 ‘청중의 필요’와 ‘성경 본문의 의도’,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보통 미국에서 공부하고 목회하시는 분들은 텍스트보다는 컨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반면 유럽에서 계속 공부한 사람들은 청중의 상황보다는 성경 본문이 뭐라고 말하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 간에 무게 중심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강해설교의 장점은 무엇보다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하면서도, 청중에게 적실한 적용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중의 필요가 본문보다 우선시되면 작위적인 설교를 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설교자가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설교하기보다는 본문 중심으로 설교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적실성 있는 설교를 하게 된다.


김지혁 목사 남서울교회에 부임하시게 된 배경과 남서울교회 성도들의 성향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화종부 목사 학부 때 전공이 정치 외교학이었다. 정치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나라에 대한 걱정과 몸부림, 대학생들의 데모,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 등 고민이 많은 청년 시절을 보냈다. 시대에 대한 아픔을 지니고 자주 청와대 앞을 지나면서, 믿음이 바로 선 지도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고, 지난 30년간 한국 교회의 부흥을 목도했다. 그러나 시대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 목양적 고민이 있었고, 제자들교회에서 젊은이 사역에 헌신했다. 그리고 남서울교회의 청빙을 받았다. 청빙위원회에서 여러 번 찾아와 담임목사직을 제의했지만 거절했다. 기도를 해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사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내 길을 인도하시는구나’ 하는 인도하심을 느꼈고, 결국 부르심에 순종했다. 많은 신학생과 청년들이 남서울교회 부임에 대해 쓴소리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왜 이곳으로 부르셨는지 나중에 알 수 있었다. 통일 시대를 대비해 일찍이 남서울교회는 남북나눔운동 등을 활발히 펼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통일을 대비한 사역들을 내게 섬기라고 하신 것 같았다. 또 목회자로서 나 자신이 남서울교회와 조화가 잘 맞았다. 나는 성향상 목회를 할 때 잘 나서지 않고, 성도들이 앞서서 하기를 원한다. 남서울교회는 강남에 있지만, 굉장히 서민적이다. 성도들이 부자라는 티를 안 낸다. 이는 홍정길 목사님의 목회 색깔이 성도들의 삶에 배인 것 같다. 사회적 신분은 높은데, 겉으로 표시를 안 낸다. 성도들의 신앙도 어려운 사람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 살고 싶어 한다. 남서울교회는 그동안 20여 교회를 분립했다. 그런 전통을 추구하다 보니,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가 되기보다는 건강한 교회들을 많이 개척해 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남서울교회가 위치한 반포지역은 한국 개발 신화의 진원지이자, 복음에 충실하게 살고 싶어 하는 중산층 이상의 성도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통일 시대를 대비하려면 그냥 예수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 즉 자기 부인과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강단에 서서 전하고 나누면 남서울교회 청중처럼 깊은 울림을 만들어 주는 청중도 흔치 않다. 설교자로서 청중과 호흡이 잘 맞고, 사역 마인드와 타이밍도 잘 맞는다. 설교를 할 때마다 간절하게 청중이 반응해 주고 있어 남서울교회 성도들에 대한 감사함이 내 설교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다.


김지혁 목사 목사님께서는 설교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화종부 목사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분의 목소리를 메시지에 충실히 담아내는 것이 설교의 목적이다. 개인적으로 목회가 힘들 때 “주인님” 하고 부르고 나면, 내 짐이 한결 덜어진다. 그 느낌은 “하나님께서 나보고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주인님이 백성을 먹일 테니 너는 그저 종으로 수종을 들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설교자는 절대 주님과 성도 사이에 있으면 안 되고, 촉매제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저 주인인 주님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노력할 뿐이다. 청중이 나를 보게 하지 않고 주인을 보게 하며, 주인을 통한 위로와 쉼, 힘과 용기를 얻도록 해야 한다. 죄가 우리의 중심을 왜곡시킨 상태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청중에게 잘 전달해 그들이 하나님께 잘 붙어 있게 해야 한다. 설교자의 설교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위로를 잘 누리도록 하는 게 설교의 목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가 너무 부각되는 경향은 우려스럽다. 우리 앞 세대 설교자들은 때론 부모처럼, 때론 보모처럼 설교를 전하는 강력한 설교자들이었다. 반면 우리 세대는 2세대로, 성도들이 잘 자라도록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세대가 할 일은 교회와 성도들이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다. 과거 세대의 설교 청중은 설교자에 대한 맹목적인 존중이 있었는데, 이젠 성도들도 설교자의 캐릭터나 스타일에 따라 무작정 맹신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변별력을 갖고 말씀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지혁 목사 목사님께서 경험하신 설교자로서의 영광과 고난은 무엇입니까?
화종부 목사 설교자로서 강단에 선 지 올해로 33년째다. 설교자로서 경험한 가장 큰 어려움은 언제나 본문이 활짝 열려서 그 안에 들어 있는 풍성한 보화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많이 울었다. ‘하나님, 제가 이 길을 어떻게 평생 갈 수 있겠습니까?’ 하는 하소연도 여러 번 했다. 신대원 때 존경하던 목회자들 중에는 설교에 재능이 출중한 목사님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과 교제하면서 나 스스로 많이 비교가 됐다. 설교에 대한 그들의 깊이와 넓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설교 한 편을 준비하는데 20시간 이상이 걸리는 후천적인 설교자였다. 그들은 새벽예배, 주일설교, 수요예배, 부흥회, 심방도 다 하면서 설교 준비도 한다. 그에 비해 나는 힘들게 설교 한 편을 준비하니, 그들처럼 그렇게 많은 설교 사역을 다 할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청중을 사랑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는 내 자신에 대해 좌절하여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공부는 재미있었지만 교회 현장을 떠나 사람과의 부대낌이 없다 보니 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변화가 오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다시 목회 현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느꼈다. 당시 내게는 설교 본문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과제였다.
설교자가 가장 영광스러울 때는 강단에 서서 청중과 설교자, 그리고 하나님 사이에서 사귐과 교통이 일어나면서 은혜를 느끼고 경험할 때다. ‘아, 이게 설교구나’, ‘아, 이런 게 설교자구나’ 하는 감격을 느낄 때마다 나는 ‘큰 교회 목회를 하지 않아도, 설교집을 여러 권 내지 않아도 되겠다. 이런 설교에 대한 감격만 있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제자들교회처럼 작은 교회에서 목회할 때도 큰 교회를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나는 모교인 총신대 신대원 개강 수련회에서 에베소서 1장으로 예수님의 구속 곧 죄 사함에 대해 설교했을 때 너무 행복하고 감격적이었다. 이런 설교를 또 할 수 있을까 여겨질 정도로 큰 영광과 감격을 누렸다.


김지혁 목사 설교자로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은 무엇이고, 후천적으로 개발된 것은 무엇입니까?
화종부 목사 고2 때 신앙생활을 시작해 신학을 하고 33년째 설교를 해 오고 있지만, 나는 솔직히 성경 본문을 깨닫고 아는 것에는 선천적 재능을 타고 나지는 않았으나 설교를 전달하는 면에서는 어느 정도 선천적 재능을 주신 것 같다. 본문을 읽고 묵상하며 깨달은 내용을 설교문으로 작성하는 것도 내게는 상당한 시간 동안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과 실제로 설교를 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 설교 원고를 들고 강단에 서면 글로 표현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말과 표정으로 나오고, 나와 청중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소통이 일어나면서 설교문에는 없는 내용들이 전달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성령님의 역사’ 혹은 ‘설교자의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설교자에게 주어진 특권이요 절대적인 은혜다. 설교자가 강단에 섰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청중과의 소통은 너무나 중요하다. 강단에 섰을 때 청중이 눈에 잘 들어오면 설교 중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 시너지가 잘 만들어진다. 과거 규모가 아주 큰 교회에서 설교할 때 회중들과 눈이 맞아지지 않아 설교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남서울교회 본당은 천 명 정도 앉는 공간이라, 아이컨택이 잘 된다. 그래서인지 남서울교회에서 설교할 때는 다른 교회에서보다 더 쉽게 설교를 한다. 내가 애초 쓴 설교 원고대로 설교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는데, 설교하면서 성령님과 청중이 설교의 시너지를 만들어 주면 청중들로부터 뭔가가 내게로 전달되며 나 혼자서는 빈약했던 것들이 채워지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수동교회, 제자들교회, 남서울교회 등 세 교회는 그런 점에서 최고의 회중들이며, 내 설교의 많은 부분은 그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김지혁 목사 칼빈은 설교의 부담을 설교자에게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청중도 마땅히 배워야 할 올바른 자세와 의무가 있다고 언급했는데, 목사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화종부 목사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청중과 호흡하는 부분에 대한 영광스러움이 있다. 청중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설교 과정에서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 내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 팀이 있는데, 돌아가며 중보기도를 해 줌으로써 함께 설교에 참여하게 된다. 스펄전의 생애에도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성도들이 설교 시간에 마음을 열고 믿음으로 듣고 경청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청중이 잘 듣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설교자에게 그 순간 무언가를 던져 주게 된다. 청중의 진지한 경청이 설교 시간에 새로운 교통과 사귐이 이뤄지게 하는 것이다. 설교 준비는 일차적으로 설교자가 하는 것이지만, 청중이 설교자와 함께 설교를 잘 들을 때 비로소 설교는 설교다워진다.


김지혁 목사 설교 본문 선택에서부터 한 편의 설교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본문 주해, 묵상, 설교문 작성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화종부 목사 남서울교회 주일예배 중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설교에 목회의 생명을 걸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예배가 예배다워지는 중심에는 설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담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고 본문을 묵상한다. 설교자는 본문을 많이 읽고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나는 설교 준비를 하루에 몰아서 하지 않고,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 2~3시간씩 꾸준히 준비한다. 학자들의 주석이나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집 한 두 권을 읽으면서, 매일 그 본문을 붙들고 씨름한다. 그렇게 책을 보다 보면 본문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목회적 통찰을 얻게 된다. 꾸준히 묵상하고 연구한 본문의 전체 얼개가 어느 정도 정해지면 읽은 내용들을 단락별로 요약하고 정리한 후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한 편의 완성된 설교문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설교 내용이 머릿속에 정리되고 주일날 강단에 올라가면 거의 원고를 보지 않고도 설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설교 원고가 완성되고 나면 그때부터 실제적인 설교 준비가 시작된다. 준비된 설교 원고를 붙들고, 주일 아침 1부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약 40분가량 예배와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데, 나는 그 시간에 설교가 열리는 경험을 많이 해 왔다. 주일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드렸던 그 기도 시간이 그날의 설교를 큰 폭으로 좌우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때는 설교 원고가 다 완성되고도 머릿속에 감이 안 잡힐 때도 있었다. 심지어 강단에 올라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안 잡힐 때도 있는데, 그러나 막상 강단에 올라가 청중을 보면 흐름이 살아나면서 쉽게 설교하곤 했다. 설교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김지혁 목사 설교할 때 성경 본문 선택도 중요한데, 목사님은 한 본문을 연속 강해하기도 하시고 필요에 맞는 텍스트를 설교하기도 하시는데 어느 쪽을 더 선호하십니까?
화종부 목사 본문 선택은 연속 강해설교와 절기설교를 병행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제목설교를 할 때도 있다. 남서울교회로 부임하기 전 제자들교회에 있을 때는 에베소서와 로마서를 2년간 설교했다. 청중이 대체로 젊었고, 긴 시간 설교해도 잘 따라와 줬기에 1시간 이상 설교를 했었다. 몇 년씩 창세기 1장부터 45장까지 설교하기도 했으며 로마서나 에베소서를 2년씩 하기도 했다. 긴 텍스트를 설교 본문으로 잡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남서울교회는 청중의 연령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설교 본문 선택은 공동체 상황에 따라 탄력성을 발휘하며 선택하는 것이 좋다. 남서울교회에서는 빌립보서, 골로새서, 디도서 같은 비교적 짧은 본문의 성경과 구약을 하고 싶을 때는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을 뼈대로 삼아 구약 본문으로 설교를 하곤 했다. 창세기 3장과 요한복음 3장을 묶어 시리즈 형식으로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로 여러 달에 걸쳐 강해하기도 했다. 청중의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설교하고 있는데 신약을 하다가 구약이 부족하다 싶으면 구약 본문을 다루고 복음을 충분히 다룬 후에는 야고보서 같은 본문을 다룸으로써 조화와 균형을 가진 설교를 할 수 있으며 청중들이 덜 지치게 되고, 성경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다.


김지혁 목사 요즘 한국 교회 안에 설교의 영향력이 사라지다 보니, 설교를 통해 사람이 변할까 하는 우려의 소리도 높습니다. 이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화종부 목사 설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채울 수는 없지만, 설교는 사역의 가장 우선순위가 돼야 하고 또한 목회 사역에서 사람을 섬기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 오랜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동안 수많은 운동과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사라졌지만, 설교는 변함없이 존재하며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니 설교자는 설교 하나에 목숨을 걸고, 설교 사역에 승부를 거는 일에 투신해도 된다. 설교에 힘을 다하고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좀 더디 바뀌는 것 같고, 원하는 만큼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내고 말씀을 살아내는 복을 틀림없이 볼 수 있다. 제자들교회를 사임하고 떠날 때 그런 행복과 기쁨을 누렸다. 젊은이들이 많은 그 교회는 참 더디 바뀌는 것 같고, 자라지 못하는 것 같은 아픔이 있었는데 결정적인 순간 행복한 이별을 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나, 나에게 공히 그립고 귀한 만남으로 서로 기억하며 살아가는 복을 누리게 해 줬다. 그동안 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인 그 교회가 내 설교를 듣고도 잘 안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어른스러운 결정을 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어느새 그들은 성숙하게 자랐던 것이다.


김지혁 목사 프로 바둑 기사들은 복기를 하면서 실력을 쌓는다고 하는데, 목사님도 자신의 설교 영상을 보시면서 스스로 평가하시는지, 설교 피드백을 해 주는 사람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화종부 목사 간혹 내 설교 CD나 테이프를 선물하는 분도 계시지만 나는 내 설교 영상을 잘 안 보는 편이다. 사실 내 설교의 최고 피드백은 아내가 해 준다. 올해로 결혼한 지 만 31년이 됐는데, 단 한 번도 “오늘 당신 설교 은혜로웠다”라고 말해 준 적이 없었다. 아내는 나의 설교에 대해 객관적으로 비판해 주는 소중한 사람이다. “왜 손은 그렇게 많이 쓰냐?”, “왜 눈은 자주 깜박거리느냐?”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내 설교와 스타일에 대해 피드백을 해 준다. 내가 공인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아내의 지적이 불편해 부부 싸움도 많이 했다. 아내만큼은 내 편이었으면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게 그런 솔직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는 아내의 지적이 내 설교를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아내의 설교 피드백이 요즘은 달게 느껴진다. 아내는 그런 면에서 지혜롭고, 또 분명한 어조로 내 설교에 피드백을 해 준다. 아내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내 설교의 가장 좋은 조언자다. 이처럼 설교자에게는 쓴소리를 해줄 야당이 한 명쯤 곁에 꼭 필요하다.


김지혁 목사 오늘날 설교자들이 말씀을 선포할 때 직면하게 되는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화종부 목사 한국 교회에는 좋은 설교자들은 많지만, 예수님에 대해 능수능란하게 설교하는 설교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설교자들의 설교에 예수님의 이야기가 얼마나 나오는가? 일반적인 윤리설교는 많으나 구주께서 행하신 일과 그분의 성품에 관한 설교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예수와 예수 사건들을 잘 설교하게 되면 기독교적인 윤리와 적용이 가능하고, 그럴 때 비로소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해 죽어야 하고, 세상을 위해 썩어져야 한다는 복음 안에서만 가능한 강력한 삶에 대한 도전도 가능하다. 우리가 죽으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힌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2배 이상 풍작하기 어렵지만, 주님은 몇 십 배를 약속하셨다. 그것은 죽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의 설교 안에는 그런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그래서 기독교적인 윤리의 과격함과 파격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겨우 민간단체 수준의 윤리나 일반 도덕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를 설교해야 그 수준을 뛰어넘는 삶이 가능하다. 예수 사건에 능숙하지 못한 설교자, 예수 이야기가 부재한 설교가 오늘날 한국 교회 강단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지혁 목사 어떻게 하면 예수 사건에 대해 능수능란한 설교자가 될 수 있을까요?
화종부 목사 신학대학원을 갓 졸업 후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데, 내 복음 이해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알게 됐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지식이 딱 <사영리> 수준이었다. 이후 십자가와 관련된 책을 부지런히 구해서 읽고 묵상하고 공부했다. 로마서 연구도 이때 했었는데, 복음에 대한 곤고함을 느낄 때마다 지금도 로마서로 돌아가곤 한다. 그만큼 로마서는 내게 영적 젖줄처럼 늘 새로운 복음에 대한 감격을 안겨 준다. 개인적으로 로마서 본문만 8년에 걸쳐 4번 설교하면서 복음을 재발견하고 복음의 감격과 확신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복음서를 부지런히 연구하는 것도 복음과 예수 사건을 능숙하게 설교하는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위대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아브람 카이퍼를 아브라함 카이퍼가 되도록 한 것 역시 ‘복음의 재발견’이었다. 복음에 기반을 두지 않는 윤리적 설교는 영향력을 미치기 힘들다. 한국 교회 강단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를 설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를 많이 강조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 강단에서는 복음이 선포되는 비율이 적다. 복음을 가르치기는 하는데, 강단에서 확신 있게 복음이 선포되는 비율은 더욱 적다. 그만큼 복음이 설교자의 것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복음의 능력이 설교자나 청중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결국 예수로부터 나오는데, 요즘은 교회에서 성찬식을 할 때도 성도들이 복음에 대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지혁 목사 목사님께 큰 영향을 끼친 설교자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화종부 목사 개인적으로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린다. 첫 번째 영향을 받은 설교자는 마틴 로이드 존스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후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 있었지만, 마틴 로이드 존스를 책으로 만나면서 방황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목회직의 영광과 설교의 복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이 놀라운 부름을 받았구나’ 하는 감격과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 영향을 준 스승은 첫 번째 스승인 마틴 로이드 존스를 연구하고 돌아온 울산교회 정근두 목사님이다. 실제로 마틴 로이드 존스 같은 설교가 한국과 목회 현장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정근두 목사님을 통해 목격했다. 정 목사님이 포체스트롬대학교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부활 주일 채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때 나는 빛을 봤다. 당시 나는 내수동교회 대학부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었는데, 부흥회 강사로 교단 배경도 달랐던 정근두 목사님을 다섯 번이나 모셨을 정도다. 세 번째 영향을 받은 설교자는 내수동교회 박희천 원로목사님이다. 박 목사님은 설교를 유려하게 하시기보다, 오직 본문에 천착한 설교를 하셨고 결코 잔재주를 부리려 하지 않고 담백한 설교를 하셨다. 박 목사님의 설교에는 언제나 당신의 진실하고 정직하며 겸손한 성품이 잘 묻어 나왔다. 이 세 분은 내게 좋은 설교자로서 스승이 됐고, 내 설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지혁 목사 목사님께서는 본문 장르에 따라 설교 형식이나 준비도 달라지시는지 궁금합니다.
화종부 목사 개인적으로 시편을 설교하다가 멈춘 것은 내가 시편의 리듬을 잘 살리지 못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편 같은 장르는 논리적 설교를 좋아하는 내가 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끼는 장르이다. 내가 마틴 로이드 존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설교가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스펄전의 설교를 읽으면 마치 설교가 그림을 그리듯이 그려지는 장점은 있으나, 나는 스펄전의 설교를 읽으면서 많은 유익을 누리지는 못했다. 스펄전은 좋은 설교자이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논리적이고 사유의 흐름이 비슷한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읽으면 버릴 것이 없다. 로이드 존스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그의 로마서와 산상설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권인 반면, 요한일서와 빌립보서는 좀 밋밋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됐다. 로이드 존스 같은 대가에게도 잘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서처럼 복음의 엑기스를 다룰 때는 깊이 있고 탁월하지만,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다룰 때는 교회론을 풍성하게 열지 못하는 한계가 엿보였다. 아마 그 시기가 자유주의와 논쟁할 때라 구원론은 확실한 강점을 가진 반면, 교회라는 주제는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다. 내게는 내러티브와 시 장르가 큰 약점이다. 시편도 이미지와 리듬이 중요한데 나의 기질이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 시편설교에서는 자주 실패하곤 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도 설교를 한번 해 보려 한다. 사무엘상하 본문은 토요 새벽예배 때 설교하고 있는데, 내러티브설교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박희천 목사님은 내러티브의 천재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그분이 설교하면 빨려 들어가 버린다.


김지혁 목사 목사님의 목회 여정 가운데 설교자로서 변화된 모습과, 남은 목회 기간 동안 추구하시고 싶은 설교자상은 어떤 것입니까?
화종부 목사 나는 30, 40대에 성경 본문이 안 열려 많이 힘들었다. 의욕만 앞서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토요일 늦은 시간에야 주일설교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다 40대 후반부터는 한 주 전에 설교 원고를 준비해 한 주 동안 숙성시키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설교한 지 20년이 지나니까 신약을 다룰 때 구약이 조금 보이고 서신서를 다룰 때 복음서가 보이면서 설교 준비가 조금 쉬워졌다. 설교 준비 시간도 줄어들게 되니 빠듯했던 일주일에 여백이 생기고, 설교 내용도 풍성해지고,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할 수 있게 됐다. 그때야 비로소 토요일 결혼 주례를 할 때에도 쫓기는 마음이 없어지고, 주일예배에 대한 기대감도 더 커지게 됐다. 목회와 목양에 대한 여백이 생기고, 성도들의 긴급한 심방 요청이 들어와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솔직히 그동안은 설교 준비에 온통 집중하다 보니 장례, 결혼, 목양 등 꼭 필요한 심방은 했지만, 대심방, 행정 심방은 거의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설교 준비를 위한 본문 묵상이 내 목회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이다. 앞으로의 개인적인 소망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목회자를 돕는 사역을 하고 싶다. 이는 신학교나 재교육 기관을 만들어서 돕기보다 내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의 삶의 자리로 들어가서 그들을 직접 만나 성경을 함께 공부하고 중요한 목회적 결정을 해야 할 때 목회 컨설팅을 해 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후배 목회자들이 말씀에 충실한 사역을 하고, 한국 교회의 설교 내용도 복음으로 꽉 채워질 것을 기대해 본다. 사람이 하나 자라려면 바른 가르침과 그 가르침이 목회 현장에 제대로 적용돼야 하는데 후배 사역자들을 잘 도와 이 둘을 균형 있게 감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강단설교는 복음적인데, 현장과 행정이 세상적이면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사람이 자랄 수 없다. 성도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성경적인 방식으로 공동체의 행정이 집행돼 사람이 잘 길러지고 자라는 공동체를 일궈 가도록 목회자를 돕는 목회를 하고 싶다.

Vol.214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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